감정 인문학 31 : 좋아한다는 마음

by 수안

나이가 들수록 이상한 일이 하나 생긴다.

사람들은 점점 좋아하는 것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단순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했고 재미있으면 웃었다. 누가 보든 말든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좋아한다는 말 앞에 작은 망설임이 생긴다. 이 취향이 괜찮은 취향인지, 괜히 유치하게 보이지는 않을지, 괜히 말 꺼냈다가 설명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사람들은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 줄여 말한다.


그냥 가끔 좋아해요. 취미 정도예요. 그렇게 한 발짝 물러난 표현으로 마음을 감춘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말이 더 마음 깊이 다가올 때가 있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여러 감정이 부담 없이 함께 들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존경도 있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어떤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은 호기심도 들어 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방식도 늘 같지는 않다.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의 생각과 태도를 보며 조용한 존경이 먼저 생기기도 한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실천해 온 삶의 방향을 보며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감동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생각을 통해 천천히 스며드는 감동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노래와 무대 하나가 생각보다 강한 감탄을 불러올 때가 있다. 처음에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았고, 다시 보면서는 그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해 내는 퍼포먼스에 놀라게 된다. 그 순간 이런 말이 떠오른다.

클래스가 다르다.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이 올라오는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감동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어떤 감동은 생각을 통해 찾아오고 어떤 감동은 음악과 움직임을 통해 몸으로 먼저 느껴진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그 감동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 궁금해진다. 그 사람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고, 어떤 생각을 좋아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 그래서 좋아했구나.

완전히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그 문장이 왜 마음에 남았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은 순간이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마음은 누군가를 그대로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발견한 세계를 잠시 함께 바라보는 경험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풍경을 잠깐 바라보는 것. 그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표현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 속에는 존경도 있고 감탄도 있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조금 더 즐겁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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