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에는 가끔 작은 놀이가 열리곤 했다. 1980년대 어느 저녁, 아버지가 펼쳐 놓은 한국일보 한쪽에는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가 실려 있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힌트를 읽고 단어를 채워 넣던 시간이었다. 막히는 순간이 오면 결국 책장에서 커다란 사전을 꺼내야 했다. 검은색 표지에 금박 글씨가 새겨진 두 권짜리 한글대사전이었다. 책집에 꽂혀 있던 그 사전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페이지를 넘기던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자성어의 첫 글자와 세 번째 글자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날은 첫 글자와 네 번째 글자만 힌트로 남아 있기도 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네 글자를 찾기 위해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겨야 했다. 지금처럼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바로 답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방법은 단순했다. 페이지를 끝까지 넘기며 눈으로 찾아내는 것.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단서를 짐작하고, 누군가 단어를 떠올리면 사전을 뒤적여 확인하던 작은 협력의 시간이었다.
사실 정답을 가장 많이 맞히던 사람은 늘 아버지였다. 우리는 힌트를 보고 이런저런 단어를 추리해 보지만 아버지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거 아닐까?”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 사전을 뒤적여 확인해 보면 정말 그 단어가 맞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마음에는 아버지가 사전의 주요 단어들을 거의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때 찾았던 사자성어가 무엇이었는지는 대부분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검은색 대사전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페이지를 넘기던 순간과 가족이 함께 웃던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도 몇몇 단어는 낱말 맞추기에서 반복해서 만났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대기만성, 고장난명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미인에 대한 사자성어 하나도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경국지색.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단어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대기만성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에는 그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니 어떤 일들은 정말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 더 길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마다 이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고장난명이라는 사자성어도 그렇다.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뜻. 어릴 때는 단순한 설명처럼 들렸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경험하며 살아가다 보면 이 말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생긴다. 어떤 일은 한 사람만의 문제로 설명되기 어렵고, 관계 속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 때문이다.
그리고 불치하문이라는 말은 훨씬 나중에야 깊이 와닿았다. 교육 일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나 생각을 통해 오히려 내가 배우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이 말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낱말 맞추기의 정답이었던 사자성어가 어느새 삶을 바라보는 태도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철학은 꼭 두꺼운 책 속에서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단어 하나가 삶의 경험과 닿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의 질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출발점은 대개 아주 사소한 기억의 서랍 속에 조용히 담겨 있다.
아마 그 검은색 한글대사전은 지금도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다시 펼쳐볼 일이 거의 없을지라도 그 사전 속에서 처음 만났던 몇몇 단어들은 여전히 내 삶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중이다.
어쩌면 철학도 예술도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단어 하나를 찾아가던 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