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놀기 08 : 전시가 남긴 몇 가지 장면

by 수안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덕수궁 옆,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묘하게 한적한 공간이다.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카페에 잠깐 앉았다. 네 개 전시의 리플릿을 펼쳐 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떤 전시부터 볼지 잠시 고민하는 시간도 미술관 관람의 일부 같다.


가장 먼저 들어간 전시는 최재은 작가의 작업이었다. 전시장 한 공간에는 식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들풀처럼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식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일이 다 살펴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의 꽃들이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놓여 있었다. 작품 아래쪽에 쓰인 이름과 설명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쉽게 지나치기는 어려워졌다.
전시 공간 스피커에서는 식물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누군가 식물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것처럼 들렸다. 도슨트는 그 장면을 보며 김춘수 시인의 「꽃」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존재를 알아본다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가던 들풀들도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공간을 지나 다음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넓은 전시장 바닥 가운데를 가로지르듯 긴 철판들이 놓여 있었다. 얇고 긴 직사각형 판들이 징검다리 길처럼 이어져 있었다. 가까이 보니 단순한 금속판이 아니었다. DMZ의 철조망을 녹여 만든 철판이라고 했다.
사람을 막던 철이 이제는 길이 되어 전시장 가운데 놓여 있었다. 잠깐 망설였다. 밟아도 되는 걸까. 도슨트는 굳이 권하지 않았고, 나도 결국 그 위를 건너지 않았다. 대신 그 길을 잠시 바라보았다.


막던 것이 길이 되는 순간.


전시장을 천천히 돌다 보니 또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음료병들이 엮여있었는데 작품 제목의 1993년 대전 엑스포라는 단어가 나를 멈춰 세웠다. 아카이브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니 원래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버려진 유리음료병들을 재활용한 작품이었다. 거대한 유리 구조물에 수많은 병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빛을 받으며 물방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기간, 아이들을 안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그곳에 갔었다. 사실 구조물의 모습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360도 상영관에서 느꼈던 공간의 압도감만은 두고두고 가끔씩 되살아난다.


기억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어떤 장면은 아예 지워지고 없는데 어떤 감각은 오래도록 남겨진다.
그리고 이 전시에서 또 하나 잊기 어려운 경험이 있었다. 이슬람 현대미술 전시장에 들어서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향이라고 해야 할지 냄새라고 해야 할지 잠깐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역해서 잠깐 나올까 말까, 전시를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코를 살짝 막고 몇 걸음 들어갔더니 시간이 지나며 후각이 억지로 적응해 버렸다.


생각해 보니 예술은 꼭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작품은 소리로 기억되고 어떤 작품은 철의 무게로 남고 어떤 작품은 공기의 냄새로 기억된다.


미술관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 없는 들풀을 불러주는 일.
사람을 막던 철을 길로 바꾸는 일.
버려진 병을 빛나는 물방울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
어쩌면 예술은 그런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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