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를 처음으로 떠올린 날.
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자 갑작스레 배가 고파졌다.
이 글은 아래 글에 이어 기록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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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많이 울고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내 손을 꽉 쥔 엄마의 떨림을 느끼며, 오히려 나는 엄마를 위로하기 바빴다.
나까지 울면 엄마가 더 무너질 것 같아서.
그 순간 머릿속에 단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자 갑작스레 배가 고파졌다.
"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슬펐는데, 병원을 나서자 그 슬픔이 무덤덤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가 보다.’
내 감정은 차갑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기묘한 변화가 나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했다. 우선 배고픈 배를 채우고, 큰 병원을 알아보는 것.
며칠 전 맛있게 먹었던 생선구이 백반집이 떠올라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해 얼이 빠져 멍하니 밥만 먹는 나 대신 정말 감사하게도 가족과 친구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을 알아보고, 가족 중 의사가 있는 병원에 진료가 가능한지 확인해줬다.
당시 코로나로 병원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운 좋게도 4일 뒤 국립암센터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진료를 마친 뒤, 각종 검사를 진행했고, 빠른 진단을 위해 국립암센터 응급실에 입원했다.
응급실에서 본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왼쪽 침대에서는 누군가가 임종을 맞고 있었다.
임종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절규는 숨 막히는 비극 그 자체였다. 응급실 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가족이 오는지를 확인하는 보호자의 간절한 눈빛은 절박함으로 가득했다.
반면, 오른쪽 침대에서는 누군가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있었다.
죽음과 깊은 잠. 그 사이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엄마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민정아, 넌 어디까지 생각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대답은 단호하게 나왔다.
"응, 엄마. 나는 끝까지 생각해."
엄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도 그래."
우리는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끝'이란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암이 난소에서 발견된 만큼 당연히 난소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응급실에서의 1박 2일 동안, 예상치 못한 진단이 내려졌다.
내 암은 ‘난소암’이 아니라 ‘대장암’이었다.
응급실에서 처음 만난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내 암의 상태나 진행 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냥 '많이 좋지 않은 상태' 라고만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국립암센터 병실에서 2021년 연말과 2022년 새해를 맞이했다.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가 퇴원하는 날,
내 몸에는 케모포트가 심어졌다.
차가운 무언가가 오른쪽 쇄골 아래 살을 비집고 들어와 피부 아래 자리 잡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나 진짜 암환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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