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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믘제옹 Sep 13. 2023

확증편향이 빚어낸 공무원에 대한 인식

MZ공무원이 바라보는 공무원(1)

저를 비롯해 정말 많은 공무원들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내 세금 받아먹고 뻔뻔하게 놀기만 한다!" 민원인들 중에 이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습니다. 드라마에서 '아, 이때 쯤이면 저 역할이 죽을거야. 사망 플래그다.'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죠. 일종의 복선 같은 건데, 민원인을 응대하다 보면 '이제 그 말씀을 하시겠군' 하는 느낌이 옵니다. 안타깝게도 이 말씀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말 많은 공무원 분들이 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Z공무원들이 처음 들어와서 대민업무 볼 때 두 번째로 당황하는 지점입니다.(첫 번째는 다음에 언급할 예정입니다.) 공무원이 되어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욕부터 먹으니 말이죠. 저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사람들은 노는 줄 알까'라는 고민이 생기더군요. 그러다보니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고민하는 버릇 비슷한 것이 생겼습니다. 일종의 자기변호 같은 것이죠. 저에게 그 원인를 찾아야 할 필요가 더 간절했던 건,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조직도 다른 조직과 다를 바 없는 데도 불구하고 유독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거세게 비난받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습니다. 또, 그 비난이 전혀 관련없는 사람에게도 향하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원이라는 그 단 한 가지 이유로 욕을 먹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확증편향이 이 고착화된 인식을 설명해줄 수 있겠더라구요.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정보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쉽게 말해 보고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의 심리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공무원을 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고?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혹시 내가 그럴 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한 번만이라도 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 글은 제가 현상을 보고 분석을 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개인적인 견해가 많이 들어가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확증편향의 정의를 보았을 때, A+B=C 라는 단순한 형태로 묘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A는 미디어이고, B는 개인의 경험이며, C는 공무원에 대한 인식입니다. 즉, 미디어에서 접하는 간접경험과 개인의 직접경험이 합쳐져서 '놀기만 하는 공무원놈들'이라는 확고한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사실 공무원에 대한 인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미디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워낙 세상이 시끄럽고 요상한 사건들이 발생해서 예전보다 덜 합니다만, 공무원 가짜 초과근무, 출장비 횡령, 음주운전, 동사무소 공무원 실태 등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쏟아지던 때가 꽤 길게 이어졌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내용에 기사에 대해 사람들은 다 같이 분노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유독 공무원이냐는 데에는, '마땅히'라는 단어가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라면 '마땅히' 부정을 저지르면 안 되고, 국민의 세금을 월급으로 받기 때문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하죠. 이 말에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갈 때 사람들은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아닌, 공무원이라는 직업군에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 대다수가 기사로 접하는 나쁜 공무원들, 저를 비롯해 절대다수 공무원들도 손가락질하면서 욕하는 사람들입니다.


미디어가 직업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기반을 다져 놓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동사무소를 갈 때 그 기억을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공무원이 일을 안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 부정적인 인식은 그 자리에서 확신으로 바뀌게 되죠. 또, 내가 구청이나 시청에 무언가를 신청했는데 기한이 임박하도록 피드백이 없다면, 이 역시 확신을 획득하는 순간에 이르게 됩니다. 행정 서비스에 대해 답답해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거예요.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으로 행정 서비스가 매우 빠르다고 하는 건 됐고, '왜 내가 해달라고 하는 건 안 해줘?' 라는 마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마음이 가혹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자격은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일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가혹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규정이 이렇게 되어 있어서 못 도와드려 죄송해하는 공무원까지도 일을 하지 않는 공무원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가혹하죠. 개선해야 할 규정과 정책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공무원은 현행 근거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공무원에게 일하라고 세금을 보수로 주는 것도, 우리 사회가 현재의 규칙 속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안 되는 걸 될 수 있도록 앞으로 개선해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안되는 걸 '바로', '나만' 하게 해달라고 하는 건 불가한 일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진다면, 우리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한 나라로 직결될 거예요.(물론 개선해야 할 규정은 조속히 바뀌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이런 확증편향적 사고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동사무소에 전동 드릴을 빌리러 갔다가 못 빌려준다고 하자 대통령실, 행정안전부, 도에 민원을 건 사례가 있었죠. 또 그 얼마 전에는 공무원들이 먹고 있던 수박을 자신에게 권하지 않아 괘씸했다며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민원의 공통적인 요구사항은 직원의 징계와 친절교육이었습니다. 사실 이 두 사례는 업무와 연관성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확증편향이 공무원 인식을 설명한다고 확신한 이유가 바로 이런 사례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뭐 뉴스 보니까 공무원들은 내 세금으로 보수를 받는데 일은 안 하잖아? 그러니 이 정도는 도와줘야 마땅한데 안해줘?'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저런 식의 민원을 거는 것이죠. 그런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공무원도 다 업무가 있고, 일 안하면 혼납니다. 근데 선생님께서 요구하시는 건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아니예요.   

 

여기서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사례는 동사무소, 즉 대민업무에 국한된 공무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실 공무원은 정말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묵묵히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는 공무원도 있고, 공무원이 아닌 줄 알았는데 공무원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동사무소나 구청, 시청에만 공무원이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공무원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접점에 있는 공무원 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된 생각일 겁니다. 민간 회사에서도 콜센터 등 업무가 제일 힘들다고 하듯, 대민업무를 담당하시는 공무원 분들도 자신의 일이 아닌, 자신과 관련 없는 분들을 위해 고생 많이 하십니다. 혹시 친절하지 않게 틱틱거리는 공무원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민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직후일 것입니다. 그런 공무원을 접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집에서 배우자와 싸우고 나왔나보다, 혹은 진상이 한바탕 하고 갔구만?




물론 진짜 놀기만 하는 공무원, 있습니다. 저도 같이 일했던 분들 중 기억에 남는 팀장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근무시간 내내 몰래 KBS 사극을 봤던 사람이었죠. 전화가 본인한테 오면, 당겨받으라는 손가락 제스처만 취하던 분이었습니다. 물론 두 눈은 핸드폰에서 벗어나지 않고 말이죠. 또 한 명은 출근해서 하루종일 핸드폰만 합니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요. 그러다 점심을 먹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면, 또 하루종일 핸드폰만 합니다. 퇴근 시간까지 버텨야 하니까요. 그리고 6시가 되면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놀기만 하는 공무원들, 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을 보면서 간절히 느꼈던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는 저렇게 나이 먹지 말아야지. 물론 저렇게 직장 왔다갔다 하면서 돈을 번다면 그것보다 편한 게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정년퇴직 직전까지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 안하는 공무원도 공무원이니까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젊은 공무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은 이겁니다. 일 안하는 공무원은 당연히 욕을 먹어야죠. 하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까지 돌을 던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게 결론입니다. 앞으로 일 안하고 불성실한 공무원을 가리켜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공무원들은 일을 안해!" 가 아닌, "저 공무원은 일을 안해!"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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