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보낸 이메일, 그리고 목적지 없는 티켓

by 김명규

#1. 갭 이어(Gap Year)의 끝자락에서


네팔에서의 1년.

그것은 내 인생의 안식년이자, 치열한 실험의 시간이었다.

공인회계사라는 안정된 직장과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떠나온 길.


시작은 단순했다.

"세상에 기여를 하고 싶다."는, 중학생 시절부터 품어온 막연한 꿈 때문이었다.

회계법인의 다이나믹한 업무도 좋았지만, 차가운 숫자가 아닌 따뜻한 사람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그래서 커리어의 공백을 감수하고 내 길이 맞나, 내가 이 일에 적합한가를 시험해보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네팔, 히말라야로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네팔에서 1년을 보내고 귀국을 앞둔 내 마음속에는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더 커졌다.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듯 했다.

그들의 사명감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았고, 그에 비해 나의 마음은 미지근한 촛불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낮은 보수와 열악한 환경.

사실 그 부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다.

단, 이 업을 통해 얻는 정신적 충족감이 더 커야 한다는 조건을 나 스스로에게 내걸었다.


정신적 충족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을 업으로 삼을 자격이 부족하구나.'

나는 실험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한국의 회계법인으로, 그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가려 짐을 싸고 있었다.




#2. 심장을 울렸던 그 떨림


그런데 짐을 싸던 손이 멈칫했다.

한국에서의 기억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네팔로 떠나기 직전, 우연히 참석했던 국경없는의사회(MSF)의 현장 활동가 설명회였다.


단상에 선 발표자는 의사였다.

그녀는 자신이 다녀온 분쟁 지역의 참상을 이야기했다.

화려한 언변도, 세련된 PT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그럼에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긴 그 진심 어린 목소리가 내 심장에 박혀 있었다.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

'그곳에서 한 번이라도 일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의 막연했던 동경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면 쳇바퀴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밑져야 본전 아닌가.

나는 닫히기 직전의 문틈으로 발을 집어넣기로 했다.




#3. 끊기는 인터넷과 3개 국어의 절박함


당시 한국에는 채용 절차나 기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일본 지부의 HR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한국의 공인회계사이고, 지금 네팔에서 1년간 현장 경험을 쌓았다. 당신들과 일하고 싶다."


며칠 뒤, 기적처럼 답장이 왔다. 화상 면접을 보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네팔이다. 하루에 전기가 4시간만 들어오는 곳.

약속된 면접 시간에 정전이 되어 인터넷이 끊겼다.

식은땀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현지 사정으로 연결이 어렵습니다."

한두 번의 연기 끝에 간신히 흐릿한 화면으로 면접관을 마주했다.


나는 절박했다.

끊기는 통신 상태를 뚫고 나를 증명해야 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무기를 꺼냈다.


회계사로서의 전문성, 네팔에서의 현장 적응력, 그리고 언어.

영어와 불어, 그리고 일본어까지 섞어가며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어필했다.

(NGO 현장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지만, 불어권 국가 파견이 많아 불어 능력이 큰 가산점이 된다.)




#4. 한국인 두 번째 행정가


귀국 짐을 다 쌌을 무렵, 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포지션은 행정 총괄 매니저(Administration Manager)


국제구호활동이라고 하면 의사나 간호사만 떠올리지만, 조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돈을 관리하고, 사람을 채용하고, 물자를 조달해야 한다.

병원 밖의 살림을 책임지는 그 자리가 내 몫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한국인 행정계열 활동가로서는 두 번째 합격 사례였다.

그만큼 드문 일이었고, 알려지지 않은 길이었다.


회계사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네팔 흙바닥에서 구르러 갔던 1년의 갭 이어.

남들은 경력 단절이라고 불렀던 그 시간이,

사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현장으로 가는 경력 전환의 발판이 된 셈이다.




#5. 목적지 없는 티켓


그렇게 나는 국제구호활동가라는 티켓을 손에 쥐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이 티켓에는 목적지가 적혀 있지 않았다.

"합격은 축하합니다. 하지만 당장 갈 곳은 없으니 대기하세요. 교육 일정은 추후 공지합니다."


어디로 갈지, 언제 떠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

나는 짐을 풀지도, 그렇다고 다시 싸지도 못한 채 서울의 방 한구석에서 하염없이 메일함만 새로고침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기다림의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 뉴스에서나 보던 그 위험한 땅이 될 줄은.



* 이 글에 담긴 내용은 국경없는의사회(MSF)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에 기반한 에세이입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