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안식년으로 삼고 싶었는데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2023년 직장 계약이 만료되어 실업급여를 1월부터 받기 시작했다.
9개월 동안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기간에 '그림책 학교'도 다니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한 달 살기를 하거나 해외에 나갈 계획이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장편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덜컥 3월 1일에 취직하게 되었다.
전혀 계획에도 없던 취직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에는 매달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낸 이력서가 생각 없이 지원한 회사 간부의 눈에 들어 한 시간 면접하고 바로 채용되었다.
고민하다가, 조기 재취업수당이 있다는 걸 알고 일 년 정도 다녀보기로 했다. (면접할 때는 탄력근무를 준다고 해서 수락했는데, 다니다 보니 결국 내 연차를 써야 했다.)
작은 조직이었고 (7명 이내) 해외 출장도 많았다. 작년 한 해 동안 발리와 스톡홀름 출장을 다녀왔다.
큰 행사가 11월에 있어서, 이 행사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회사였다. 경험 삼아 행사까지는 다녀보고 계속 남을지 결정하기로 했다.
11개월 뒤, 결론은 퇴사였다. 작년에 글을 전혀 쓰지 못했고 (예전에 쓴 글을 손 봐 상은 탔다), 건강만 나빠졌다. 건강 검진 결과를 보고 6개월 동안 금주를 했고 잠을 7시간 자도록 신경 썼다. 혈압이 늘 정상이었는데 작년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고혈압 경계가 몇 번 나왔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강남 한 복판에 있었는데, 빌딩숲 사이에서 '느리게 살기'에 대한 열망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왔다. 비합리적인 조직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 같고, 구성원들의 밑바닥까지 봤는데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일 년 행사를 치러보니 보람도 없고 동기 부여도 안 됐다.
그래서 올해 귀촌을 결심했다. 취직이 어려울 거라 생각해서 목표는 봄에 귀촌을 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지방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지원을 안 해서인지 면접의 기회도 많았고, 당장 근무 시작해 달라는 요구도 받았다. 뜻하지 않게 구직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취직이 돼 정읍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회사에는 1월 20일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다음 주가 구정 연휴라 1월 24일까지만 일하고 퇴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급하게 퇴사하는 건 처음이지만, 오히려 시기상 한가할 때고, 신규사업 계획 수립하기 전이라 덜 죄책감이 들었다. 귀촌을 한다고 하니 다들 놀랐지만 축하를 해주는 분위기였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토박이이고 지방에서 산 경험이 없는데 어떤 삶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이 안 간다. 더군다나 여자 혼자 시골 내려간다고 하니 다들 걱정을 먼저 한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 없이,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살 수 있는 삶을 꿈꾼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지만 천천히 결정하려 한다.
2월 3일 정읍으로 내려간다. 집도 구해야 하고 새로운 직장에도 적응해야 한다.
네팔에 갔을 때랑 느낌이 비슷하다. 네팔에서도 2년 살았는데 정읍에서 2년을 못 살랴?
인생 3막? 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