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 미술을 감상할 때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맥락으로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질문과 답까지 모든 것이 석판에 적혀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닌, 내가 해독하여 그 해독의 결과로 어떤 사유를 거쳐 내가 스스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그런 주체적 해석의 자세 말이다.
같이 전시를 본 이는 결국 현대 미술을 본다는 건 숙제를 받는 것 같은 일이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대 미술, 지금의 미술은 의미를 찾기 위한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적어도 내 생각에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덧붙여 말했듯-그래도 이건 너무 대책없는 숙제 같네요-질문이란, 그게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송상희 작가는 그런 면에서,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질문을 던지는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질문은 명확하고, 흥미롭다. 누구나 그 답이 내 머리 속 어떤 상자에 들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자 속을 마구 해집어보아도 그 답이 쉽게 잡히지 않는, 그런 작가였고 작품이었다.
<올해의 작가전 2018>을 보고나서 가장 먼저 든 단상은 페인팅의 전멸에 대한 것이었다. 정은영, 구민자, 정재호, 옥인 콜렉티브 중 3인은 영상 미디어 아트였으며, 정재호는 비록 페인팅으로 작품을 구성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명확히 독립적 페인팅 작품이라기보다는 설치 미술의 한 부분이자 도구로서 페인팅을 활용한 것에 가까웠다. 그런고로 장르적 특성으로 무얼 구분하는건 무의미했고, 작가들 자신도 어떤 장르에 연연하기보다는 주제에 최적으로 들어맞는 도구를 선택한 느낌이었다. 전시 전반에서는 명확하게 21세기의 냄새가 났고 소리와 움직이는 빛깔이 만연한 전시였다.
정은영은 과거의 포맷인 여성국국에 대한 총체적인 시야를 제공한다. 단순히 그 포맷을 빌려온 것이 아닌,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방위로 펼쳐 조여온다. 좋은 것은 이것이 건조한 재현 영상의 방식을 띄면서 일방적인 비판이 아닌 본질적인 접근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노골적이지 않고 뻔뻔하지만 근원적이다. 정은영 작가는 여성국국을 회복시키고 재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에서 이 포맷을 다시금 활용하면서 우리가 1950년 이 여성국국이 통용되던 사회의 느낌을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완벽한 재현이 아니기에, 항상 이 재현된 여성국국 위에는 새로운 액자가 한 겹 더 끼워져 있으며 이 한 겹의 레이어가 바로 작가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 레이어를 발견하게 되면, 정은영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비로소 포착할 수 있게 된다.
구민자는 한 번의 작업을 통해 여러 작업물을 분산해냈다. 구민자 작가가 제시한 최초의 문제는 흥미롭다. 서구의 시점에서 편의적으로 결정된 시간 관념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과연 어떤가? 4분할 된 화면에서 보이는 삼일, 혹은 이틀의 삶은 꽤 흥미롭고 이를 이룬 다양한 엘리먼트도 주위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구민자 작가는 이 질문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는데에 실패했다. 지나치게 건조한 다큐멘터리적 접근은 이 질문을 너무 날 것으로 만들어서, 오직 하나의 층위만 남게 만들었다. 비록 이 날짜 변경선이라는 개념은 무척 흥미롭지만, 그것이 충분한 특이점을 만들어낼만큼 복합적인 치환을 이뤄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8~11시간 동안 지속되는 영상은 지나치게 날 것을 그대로 기록한 냄새를 풍기고 있고 사실 이 작가의 모든 전시가 아카이빙에 가깝다. 디자이너 출신 미술가들에게서 보이는 '예쁜 아카이브' 에 불과한 작품의 냄새가 났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너무나 그런 특징이 보여 과연 그런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실제로 디자이너 출신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재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아카이브라고 표방했으며, 실제로 그렇다. 다만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모든 작업물이 지나치게 '순진'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충분히 복잡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첫 작업은 상당히 흥미로웠고, 이 건물이 고작 가냘픈 목판 하나로 세워진 입상에 불과하다는걸 알았을 때는 약간의 울림이 있었지만 역시나 모든 '아카이브' 작업이 그렇듯이, 습관적 수집에 가까운 작품들이 있었다. 비록 주제에는 들어맞기는 했으나 그건 카테고라이징에 가깝지 큐레이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 보았다.
옥인 콜렉티브는 이미 과천관에 많은 작품이 있다는 것을 같이 관람한 이에게 들었다. 어찌되었던 옥인 콜렉티브는 다수의 영상 작업을 출품했는데, 제각각 다른 느낌이었다. 이들은 인터뷰의 형식을 많이 빌리기는 했지만 그에 의존적이지는 않았고, 다른 작가들의 전시처럼 역시 건조하고 평평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확실한데, 개인적으로 작가가 한가지 주제의식으로만 여러 작품을 생산해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일종의 라이프 워크가 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건 결국 도시적 삶에 대한 회의감과 동시에 우리가 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도시민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향수라는 모순적 내면에 대해서였다.
당장 모두 보고 난 감상을 말하자면 지난해의 전시보다는 훨씬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일단 구민자와 정재호의 작업은 결국 아카이브였기에 깊이가 얕았고 작가들의 성향상 전반적으로 좋은 질문을 명확한 디렉션, 방향 제시와 함께 던지기 보다는 툭 던져놓고 알아서 주워가기를 바라는 쪽에 가까웠다. 지난해의 네 작가 송상희 백현진, 써니킴, 박경근은 저마다 명확한 디렉션을 가지고 있었고 관객은 보다 쉽고 명확하게 작품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면이 다소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두 명의 작가가 아카이브를 표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정은영과 옥인 콜렉티브였는데, 두 작가의 집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은영의 <보류된 아카이브>는 작업의 성향을 드러내는데 정은영 작가의 작업은 모두 행위나 설치 작업을 영상으로서 다시 담아낸 형태를 띄고 있다. 결국 그 작업들은 모두 현대의 보편적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유통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 보편성이 매우 훌륭한 지점이라는 딴 생각을 잠시 했다. 현대 한국에서 '드레퓌스'가 되어버린 성 문제를 이런 방법으로 다뤘다는 것 자체가 매우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미디어 아트의 물성이라고 할까?
옥인 콜렉티브는 세 작가의 라이프워크 중 일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사회 공동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오고 있다. 다만 이번 전시 작품 대다수가 작업이 아닌 취재의 느낌을 주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작업을 가져와 보았을 때 그것이 일정한 목적 하에 의도된 디렉팅이라 여겼으며, 내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취재이자 다큐멘터리로서 미술 작업이 아닌 일반적 방송물과의 경계에 걸쳐 있었고 꾸준히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는 작업물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모든 작품을 지켜보게 했다.
<올해의 작가전 2018>의 화두는 주제와 방식 양면에서의 현대성, 그리고 주체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최측은 전시 스테이트먼트에서 "4명(팀)의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상황/사고가 본래적인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영상을 주축으로 한 미디어 아트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영상은 촬영의 주체, 그리고 화면의 방향-즉 작업물을 지켜보는 '나' 가 구분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을 잘 지킨 이들의 주제의식이 보다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으로'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 '숙제거리를 주는 미술' 이라는 것은 사실 오명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잘했냐 한다면 올해 <올해의 작가상 2018>에서는 그 정도가 명확하게 차이가 난다고 본다. 정은영과 옥인 콜렉티브의 작품을 더 보기 위해서 몇 번은 더 들러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