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착해서 좋아요
내일은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가 있는 날이다.
며칠 전, 아들이 전화로 물었다.
“엄마, 시간 되시면 오실래요?”
손녀들이 유난히 나를 잘 따르기에,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래, 갈게. 그날 보자.”
조금 전, 내일 아침 일찍 모시러 오겠다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아들의 목소리보다 먼저 튀어나온
두 아이의 맑은 외침이었다.
“할머니 사랑해요~ 하트 하트!”
그리고 잠시 후,
“할머니는 착해서 좋아요.”
착해서 좋다고…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들어앉았다.
세상의 어떤 찬사보다 따뜻했고,
어떤 위로보다 조용히 나를 기쁘게 했다.
아이에게 ‘착함’이란
세상을 거스르지 않는 부드러움이 아니라,
자신을 감싸주는 온기의 이름일 것이다.
잔소리 대신 눈빛으로 건네는 이해,
화를 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마음.
그런 것들이 아이의 눈에는 ‘착함’으로 비쳤겠지.
돌아보면, 나는 늘 착하게 살고자 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성실히, 조용히,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도 있었고,
열심히 일해도 인정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며느리라서, 엄마라서, 아내라서
그저 묵묵히 침묵을 삼킨 채 세월을 건넜다.
그래서일까.
‘착하다’는 말은 때로 견딤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온 세월의 무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은 달랐다.
그 아이가 본 ‘착함’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애쓴 미소가 아니라,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마음이었다.
그 한마디는 내 삶을 보상하듯,
작은 상장처럼 내 마음을 감싸 안았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손녀의 기억 속에서
착한 할머니, 편한 할머니로
오래오래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