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명교 Jan 12. 2019

실패청년파티?! 다양성과 자치를 위한 청년공간

베이징의 또 다른 대안공간 706청년공간에 가다

706청년공간을 처음 알게 된 건 한 중국인 친구가 위챗(微信) 타임라인(朋友圈; 펑여우촨)에 공유한 어떤 행사 홍보 때문이었다. "실패청년파티(失败青年派对)"라고 이름붙여진 이 파티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일군의 청년들이 모여서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고 같이 떠들고 같이 좌절하고, 이 뭣같은 세상에서 같이 뭘 할 수 있을지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행사였다. 이름도 재밌고, 가면 나도 할 얘기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땐 유학생활의 '고독감'이 극에 달할 때였기 때문에 어디든 가서 누구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게 하는 실패청년파티 포스터


사실 당일이 되어선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었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기도 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가면 외국인은 나밖에 없을텐데 가서 대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용기내서 가봤다. 이 행사는 참석 전에 자신의 실패담을 적어서 보내야 했다. 나도 실패담을 적었다. '실패'하면 또 나 아닌가.


706청년공간(이하 '706공간')은 베이징 학원로 오도구역 근처의 화칭자위안(华清嘉园)라는 아파트단지 안에 위치해 있다. 오도구역 근처는 술마시러 종종 갔었다. 여기 유명한 대학들이 몰려있어서 한국인 유학생도 많고, 한국 술집도 많아서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가는 게 쉽진 않았다. 행사가 저녁 7시 시작이라 6시 쯤 갔는데 이미 한참 캄캄해진 뒤였기 때문이다. 캄캄한 밤에 처음 가는 아파트단지를 뒤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 헤매다가 다행히 행사 시작 전에 도착했다. 본부는 15동 20층 꼭대기에 있다. 안에 들어가니 내가 상상하던 모습보다 더 크고 좋았다. 일단 본부는 복층 아파트에 있는데 대략 70평은 되는 것 같았다. 아래층은 일종의 바 같은 모습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카운터가 있고, 이곳에 항상 누군가가 지키고 방문자들을 안내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 706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이곳에서 일할 사람을 정하고 그들에겐 방세를 면제해준다고 한다.


706청년공간 본부 거실


방세라니? 본부라니? 그렇다. 706공간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면서 거주공간이었던 것이다. 이곳 오도구 화칭자위안 단지에 몇 채의 집이 있고, 지하철로 따지면 바로 다음 역인 육도구역 근처에도 있었다. 각 공간에는 베이징에서 대학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이 살고 있었다. 총 8개의 공간이 있었고, 각각의 공간에는 저마다 테마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선 뒤에서 다시 소개하려 한다.


실패청년파티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어림잡아 100명은 모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빼곡했고, 동시에 여러 행사가 열렸다. 나는 참가비 30위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미리 써서 보낸 실패담은 예쁘게 인쇄되어 게시판에 붙어있었는데, 확실히 주목받았던 것 같다. 한국인인데다, 대학을 두 군데 다녔고, 영화를 연출을 전공한데다, 노동자운동 경험이 있고, 잡지를 만들었었으며,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해왔다는 경험 자체도 독특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멍하니 서있어도 하나둘씩 와서 말을 걸었다. 확실히 중국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개방적이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대화를 잘 나눈다. 이건 버스에서 종종 느끼는 건데, 출퇴근 시간이 아닌 한낮의 여유로운 시간대에 버스를 타면 아주머니들끼리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자유롭게 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기차를 탈 때나, 공공장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이연복 쉐프가 김강우, 허경환 등 연예인들과 함께 중국 산둥에 가서 한국식 중국요리를 중국인들에게 파는 프로그램인데, 여기 등장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딱 이런 모습이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주저없이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이런 모습은 확실히 한국과 다르다.


706청년공간 본부의 예전 모습. 지금은 인테리어가 바뀌어 좀 다르다.


나 역시 한국인 고유의 낯가림을 갖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는 얘기도 시작하지 않는 게 내가 한국에서 평생 살면서 배운 습관이다. 그래서 중국에 처음와서 생활하다가 적잖이 당황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나한텐 별로 말도 걸지 않는 편이다. 딱 봐도 한국 사람처럼 생겼댄다. (...)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댄다. 어쨌든 나는 중국인들의 이런 개방성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점이 중국 문화의 좋은 점이 아닐까 싶었다. 한국인의 낯가림은 뭘까? 옛날에도 그랬을까? 아니면 20세기 이후의 현살일까? 궁금하다.


행사는 실패담 공유와 함께 시작됐다. 저마다 앞에 나가서 아주 짧게 자신의 실패담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30분만에 끝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말할 순 없었다. 다들 뭔가 자신의 실패를 말했는데, 대부분 "베이징대나 칭화대 같은 명문대에 다니지 못해 이미 실패"라거나, "취직하지 못한 채 빈둥거리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에 부응하고 싶지 않다는 말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싶은데 그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이런 건 한국과 너무 비슷하다.


각자의 '실패담'을 털어놓는 참가자들.


실패청년파티에 참가자 중엔 내가 아는 친구도 있었다. 피촌에서 만났던 활동가였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전시를 같이 봤던 바로 그 친구 A다. A를 익명 처리하는데엔 이유가 있다. 이미 당국의 감시를 받았었던 친구이기 때문이다. A는 파티의 주요 행사 중 하나인 '토크'에 참가했었다. 이 행사를 기획한 한 친구가 사회를 보고, 대략 4명의 패널이 앉아서 자신의 실패담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주위에 대략 20명이 둘러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중엔 함께 얘기했다. 자세한 내용을 다 알아듣진 못 했다. 저렇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땐 말도 너무 빠르고, 어려운 말도 많아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좌절...


윗층에서는 연극놀이 행사가 열렸다. 아우구스토 보알의 연극론에 따라 직접 즉흥연기를 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예전에 한예종 다닐 때 친구들이랑 <민중연극론>인가 하는 책을 같이 읽고 즉흥연기를 해본 적 있었는데 무지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참가하지 않았다. 6살 수준의 중국어로는 불가능하다. 더 이상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실패청년파티에 와서 또 실패인가.



윗층으로 가려면 둥글게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계단 벽에 전 세계 여러 예술가들의 초상이 붙어있었다. 이곳의 분위기를 확 느끼게 해주는 장소였다.


나는 주로 토크 행사가 열리는 '거실'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나둘씩 나에게 말을 걸고, 내 이력이나 경험에 대해 묻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고 인사를 나눴다. 내게 말을 건네는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도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관방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지향을 갖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뭔가 하고 싶지만 중국에선 그런 걸 하긴 어렵다고.


실패청년파티 참가자들이 써놓은 각자의 실패담


나중에 706청년공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다. 특히 이곳 책임자가 내게 적극적으로 부탁도 하고, 몇 가지 제안도 했었는데, 그로 인해 706공간을 소개하는 글의 한글 번역도 맡아서 도와주었다. 이곳이 실은 일종의 거주공간이라는 걸 알게 된 내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가 본부 외의 다른 공간들을 보여준 적도 있었다. 한 곳은 본부처럼 3층 복층 구조로 된 큰 집이었는데 이곳엔 16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 말그대로 주거에 집중한 곳이었다. 또 한 곳은 "남자 셋, 여자 셋" 6명이 사는 학술테마 실험실이었는데, 나중에 나랑 친해진 여자 애들 둘이 이곳에 살았다. 그밖에 다른 집들은 음악, 영화, 문학, 오락 등 저마다 다른 테마를 갖고 있다. 거주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테마 공간을 택해 거주하고, 살면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활동 계획 등을 다른 거주자들과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고 했다.


가장 먼저 만든 생활실험실은 오도구(五道口)의 화칭자위안(华清嘉园) 아파트단지에 있습니다. 이곳은 학술을 강조하기 때문에 ‘학술테마 생활실험실’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구성원 중 Mylikes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방구석 프로그래머’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실존주의 철학서 《아웃사이더》나, 신경과학, 후성유전학을 함께 논할 친구를 찾았습니다. 최근 UCLA의 미디어예술대학원에 지원한 저우챠오(邹俏)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룸메이트 여우양(悠洋)과 뉴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우양은 영국왕립예술대학를 졸업해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리학 연구자 짜오펑(赵鹏)도 있습니다. 중국과학기술대학 물리학 박사과정으로 연구 중인 그는 최근 이곳 학술테마 실험실에서 이론 강좌를 열기도 했죠. 옌펑(艳鹏)도 그처럼 강좌를 개최한 구성원 중 한 명입니다.


706공간의 소개 글 중 일부다. 이처럼 학술 실험실에선 강좌를 빈번하게 개최하고, 세미나를 기획해 열기도 한다. 문학테마 실험실에는 소설과 시 등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여 산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문학 토론회나 시 낭송회를 연다고 한다. 다른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그 테마에 맞게 행사를 기획하는데 대외 공개 행사도 있고, 거의 자기들끼리 여는 행사도 있었다. 내가 처음 참가했던 '실패청년파티'도 그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곳은 단지 숙박 시설이 아닙니다.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706 생활실험실의 거주자들은 각 공간에서의 교류만이 아니라, 다른 생활실험실을 오가며 교류하기도 한다. 문학테마 생활실험실의 문학 살롱에 참여하고, 음악테마 생활실험실에서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하며, 영화테마 생활실험실에서 영화를 본다. 각 공간의 구성원이 모이면 다양한 공동체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질 것이다. 거주자들 중엔 프로그래머‧뉴미디어 종사자‧다큐멘터리 촬영기사‧대학생 등 다양한 직업이 있고, 이들의 취미 역시 명상‧요리‧디자인‧히피문화 등 다양하다. 생활 패턴 역시 낮에 출근하는 직장인이 있는가 하면, 밤 새워 일하는 프리랜서도 있다.



706공간은 이런 다양성과 자치를 주요한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각 생활실험실을 각각의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또 706공간은 주거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은 베이징이라는 초대도시의 삶의 고단함을 강조한다. 청년들이 도시의 소비문화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치문화를 만들어가자는 게 설립 취지라는 거다.


706공간은 2012년에 수십여 명의 공동 발기인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그때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여러 채를 구해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건 좀 놀라운 점이다. 706공간의 책임자는 어디선가 접한 서울시의 청년거주 정책이나, 민달팽이유니온 등에 대해 얘기하며 부럽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706공간의 실험과 사업이 훨씬 대단해보였다. 서울시의 청년주거공간 확대를 위한 정책은 단순히 주거 복지사업일 뿐이니까. 민달팽이유니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민달팽이유니온이 만들고 있는 주거 공간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치와 주체적인 행사 기획을 하고 있을까 싶다. 어쩌면 하고 있을지도. 어쨌든 이곳 책임자는 중국에 이런 생활자치공간이 더 많이 생기고, 이후에는 다른 여러 공간들과 네트워킹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확실히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관심과 열정이 많아 보였다.



이후에도 나는 706공간에 여러 차례 갔다. 한 번은 어떤 애들이 위챗에서 말을 걸어서 대화를 시작했는데, 자기들은 실패청년파티 때 참석하진 않았지만 이곳 거주자이고, 피촌과 뤼투 선생님의 연구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원래 그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건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런 목적에 호응해서 5명이서 만나게 됐다. 회의를 706공간에서 했는데, 그 계기로 더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됐다. 다들 이제 이미 학부를 졸업했고, 저마다 다른 꿈을 꾸고 있었는데, 1명은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벨기에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1명은 지금은 IT회사에 다니지만 곧 그만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중국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또 한 명은 매주 피촌에 가서 그곳의 문화 활동을 촬영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다.


또 한 번은 강연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날은 약속이 있어서 아래층에서 한참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이곳 책임자가 와서 귓뜸해주길 오늘 어떤 강좌가 있는데 내가 관심있을 것 같으니 들어보라는 거였다. 뭐냐고 물으니 최근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벌어지는 도시에서의 대중시위에 대한 강연이라고 했다. 오호, 확실히 내가 관심있는 주제였다. 게다가 난 어쨌든 승리한 대중시위의 활동가 아니었나. 나 아니면 누가 들을까 싶어 강연을 들었다. 강연자는 북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딴 후, 뉴욕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자였는데, 그는 주되게 2014년 여름과 가을에 있었던 홍콩 우산운동이 결과적으로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길 이게 실은 그의 주된 연구 주제는 아니지만, 지난해 흥미를 갖고 연구했다는 거였다. 그의 관점은 이전에 잘 접하지 못한 내용이었고, 주로 주체로 참가했던 사람들의 경제적, 문화적 배경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 운동이 실패로 치달은 근거에 대해서도 상당히 충실하게 설명했다. 내용에 상당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치경제적 배경의 다른 측면, 즉 홍콩 사람들의 대륙(인) 혐오에 대해 다룬 연구 논문도 읽은 적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 2018년 12월 31일에도 갔었다. 아마 7번째 쯤이었을 것 같다. 그날은 내가 갔던 날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온 날이었다. 대략 150명은 되어보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딜가나 빼곡했다. 아랫층에선 일종의 송구영신 수다회가 동시에 여러 개 열렸고, 윗층 도서관에서는 음악 공연이 열렸는데 나는 주로 공연을 봤다. 아마추어지만 엄청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이라서 좋았고, 주로 팝송을 불러서 아는 노래도 있었다. 나중에 혹시 중국에 다시 와서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살게 되면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살면 항상 중국 친구들과 접하며 사귈 수 있고, 여러가지 좋은 행사에도 참가할 수 있으니 외국인으로서 중국어를 빨리 배우기에는 최상의 조건인 셈이다.


지난 10월 이후 나는 이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없더라도 이곳에 거주하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놀러왔다. 그 친구들과 다양한 교류를 쌓고, 다양한 약속도 했다. 이날 여기에 간 건 너무 다행이었고, 내겐 너무 좋은 운이었다.


덕분에 '장소성'이란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장소가 있다는 것은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가끔 우리는 그 효과를 간과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간이 만들어질 때, 예측하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다른 효과들도 생긴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그 수혜자가 바로 나였고, 나는 이곳에서 미래를 위한 여러 만남과 여러 가능성을 얻었다.


이런 상상도 했다. 서울에 '아시아 각국의 청년들이 함께 모인 청년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하노이와 오사카, 베이징, 타이베이 등 각각의 도시에서 온 청년들이 함께 모여 살고, 교류하면서 훗날의 국제연대를 기약하는 관계맺음을 한다면... 몽상일 뿐이겠지만, 그런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분명 엄청난 가능성도 함께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운동의 조건이나 여건 등을 볼 때 그런 걸 만드는 최적의 장소는 서울일 것 같다.


방금 책임자 선생님이 단체 채팅방에 날 초대했다. 19일에 "706사상파티"를 여는데 발표자로 참석하란다. 며칠 전 물어보기에 별 생각 없이 하겠다고 했는데 나의 무슨 사상을 발표하지? 떨린다... 달달 외워서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 경제성장의 어두운 이면, 노동자들의 절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