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집시, 에스메랄다와 카추샤

by 양문규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집시라고 짐작되는 이들과 심심찮게 마주치게 된다. 파리에서는 애를 포대기에 업고 다니는 집시 가족한테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일도 있고, 지하철에서 아버지는 기타, 소녀는 캐스터네츠를 치며 노래하면서 구걸하는 집시 부녀(?)와 마주친 적도 있다.


서유럽에서는 대개 소매치기 내지 구걸하는 집시들만 봤는데, 동유럽을 가면 자동차로 이동하다가 집시들이 소규모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지역도 볼 수 있었고, 도시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집시들로 구성된 작은 밴드가 초청돼 연주하는 걸 본 적도 있다.


슬로바키아의 집시.jpg 슬로바키아의 어느 지방 결혼식 피로연에서 집시로 보이는 작은 밴드의 연주


유럽 역사에서 집시들이 갖은 천대를 받아왔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들은 이차 대전 당시에는 유대인과 같이 나치에 의해 집단 학살까지 당한다. 나치는 집시를 장애인, 정신질환자 급으로 취급하는데, 이들의 학살 사실을 베를린 관광 당시 확실히 알게 됐다.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한편에 연못으로 꾸민 추모 공원이 있다. 나치에 희생된 집시만을 따로 기리는 장소다. 안내판에 “롬과 신티”의 추모장소라 해서 순간 이들이 누군지 싶었다. 집시를 부르는 말은 다양한데, ‘롬’ ‘신티’ 등은 집시가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롬은 그냥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러고 보니 집시들의 언어를 ‘로마니어’라 부른다. 언어 지리학자들은 로마니어의 변천 과정을 살펴, 역사적으로 인도에서 유럽까지 이어지는 집시들의 더디지만 길고 오랜 여정을 지도화하기도 했다.


추모비 집시를 가리키는 말 Sinti와 Roma의 글자가 보인다.png
추모 연못.png 이차 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된 집시를 기리는 베를린 국회의사당 옆의 추모비(위)와 추모 연못


위고의 『노트르담의 파리』(1831)에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등장한다. 노트르담 성당의 젊은 신부 클로드 부주교는 집시 여인을 증오해서, 성당 앞에서 그녀가 춤추고 북 치는 일을 금지시킨다. 그러나 신부는 내심으론 그녀에 대한 사랑과 질투로 괴로워한다.


신부는 그의 양자이자 성당 종지기인 꼽추 콰지모도를 시켜 에스메랄다 납치를 기도하나, 콰지모도는 파리 경비대장 페뷔스에게 체포된다. 이 때문에 콰지모도는 죄인 공시대에 올라 조리돌리기 형을 당하는데, 에스메랄다만이 물통을 풀어 목타하는 그의 입술에 대준다.


에스메랄다는 이후, 페르뷔스를 살해하려 한 신부 대신, 누명을 쓰고 사형장에 서게 되고, 콰지모도는 그녀를 구출하여 대성당 안에 숨긴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신부와 에스메랄다, 그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은 그가 가장 사랑한 두 사람 모두를 잃는다.


집시와 꼽추 - 두 사람 모두 천대받는 약자다. 그러나 위고는 이들을 위선적인 성직자와 방종한 군인 귀족과 대비시켜, 중세적 압제에 눈을 뜨는 근대적 민중의 출현을 암시한다. 『노트르담의 파리』는 1832년 혁명을 그린 위고의『레미제라블』(1862)의 전주곡 격의 작품이다.


톨스토이의 『부활』(1899)의 ‘카츄사’는 농노와 떠돌이 집시 사이에서 출생한 하층계급의 여인이다. 백작 귀족 ‘네프’는 집시 출신의 하녀 카츄샤를 강간하지만, 이후 매춘부로 전락해 법정에 서게 된 그녀를 보고 참회하며 그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그녀를 구원코자 한다.


다소 멜로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톨스토이는 실제로는 카츄샤를 빌려 당시 러시아의 토지 분배와 혁명운동의 다양한 비전을 보여준다. 이는 톨스토이가 귀족 부인 ‘안나 카레니나’를 빌려 러시아 제정 말기의 절망적 상황을 그리는 것과 비교가 된다.


카츄샤는 자신에게 청혼을 하는 네프에게, “당신은 나를 미끼로 구원을 받으려는 거죠?”라고 당차게 반박한다. 네프는 이러한 카츄샤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겪는데, 그녀를 구원하는 것은, 그녀가 아닌 곧 자기 자신을 변모시키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기를 변모시킬 수 있는 강력한 계기가 농노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곧 토지 분배의 문제임을 깨닫는 데로 나아간다. 카츄샤는 그러한 자각의 매개가 된다. 집시들은 유럽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소외당하고 천대받은 하층민 계급이었다.


그러나『노트르담의 파리』와 『부활』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와중에서, 또는 러시아 혁명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 집시와 같은 하층계급을 사회 역사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매개적 상징으로 형상화한다. 역사는 늘 천대받고 떠도는 자들에게서 체제 전복의 가능성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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