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송환을 거절한 또 다른 사건

손 씨 사건과 리우치앙 사건

by MOOK
범죄인 인도 결정을 내리는 서울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인 손 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다. 현행 대한민국 범죄인 인도법에서 이 결정에 대해 불복할 수 있는 절차가 없는 단심제로 운영이 되고 있고 이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손 씨 사건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고등법원이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 결정을 내린 사건 30건 중 손 씨 사건 판결처럼 인도 거절 판결이 난 또 다른 사건이 있다. 바로 ‘야스쿠니 방화 범죄인 인도 청구 사건’ 일명 리우치앙 사건이다. 리우치앙 사건은 중국인 리우치앙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직후 대한민국으로 도피했고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게 범죄인 인도를 청구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재판부는 이번 손 씨 사건과 리우치앙 사건 모두 인도 청구에 대한 거절 결정을 내렸지만 외국의 송환 요청을 거절한 사유가 각각 달랐다. 손 씨 사건에는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를, 리우치앙 사건에는 정치적 불인도 원칙을 인용하였다. 법적 쟁점이 어떻게 다르길래 법원에서 인용한 거절 사유가 달라진 것일까?




‘추방’과 다른 개념인 범죄인 인도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자국에 도망 온 자를 외국의 청구에 응하여 자국민을 인도하는 행위를 범죄인 인도라고 한다. 양국끼리 범죄인 인도조약이라는 특별 조약을 체결한 후에 권리와 의무를 정한다. 찾아보니 우리나라는 미국과 1998년 양자조약을 맺었고(발효 날짜인 1999년이라고 적혀있는 사이트들도 있다) 일본과는 2000년대에 양자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조약이 없어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인도하는 것이 국제 예양 상의 행위 act of comity로 본다.


우리나라는 약 51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범죄인 인도법이 있다. 이 법률안에서 인도를 거절할 수 있는 경우로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 그리고 정치범 불인도 원칙 및 예외로 세 가지로 나눠놓았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 임의적 인도 거절과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정치범 불인도 원칙
인도 범죄가 정치적 성격을 지닌 범죄의 경우 범죄인을 인도하여서는 안된다. 단, 예외적으로 국가원수를 살해하거나 불특정 다수의 생명에 피해를 입힌 테러범의 경우 정치범 불인도 원칙 성립이 되지 않는다.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
1. 대한민국 국민인 경우
2. 범죄 일부라도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행하여진 경우
3. 범죄인이 다른 범죄로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4. 제3국에서 인도 범죄로 처벌이 확정된 경우
5. 범죄인 인도가 비인도적이라고 인정될 경우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
1. 범죄에 관한 시효가 완성된 경우
2. 범죄에 관하여 대한민국 법원에서 재판 계속 중이거나 재판이 확정된 경우(일사부재리와 비슷?)
3. 범죄인이 인종, 종교, 국적, 성별, 정치적 신념 등을 이유로 처벌될 염려가 있는 경우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 손 씨는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 5번, 미국으로의 인도가 비인도적이라고 주장했고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 2번, 이미 한국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손 씨의 주장을 전부 논리적 이유로 반박 후에 기각했지만 결국 다른 임의적 인도 거절 사유를 들어 미국 송환을 불허했다. 우리나라에서 수사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다. 판결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인 회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 음란물 관련 범죄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손 씨의 신병을 국내에서 확보해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로 수집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익을 위한 판결이라지만 범죄자의 편의를 봐주고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판결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리우치앙 사건


중국인 리우치앙은 일본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던 모습에 분노를 느끼고 야스쿠니 신사 방화를 계획했다. 우익 세력들의 득세와 군국주의로 돌아가려는 일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기로 다짐했다. 리우치앙의 외할머니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희생자였고 외할머니의 기일이자 마오쩌둥의 생일인 2011년 12월 26일에 거사를 진행하였다. 정말 상징적이다.


일부러 인명 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 새벽에 범행을 실시했고 휘발유를 이용해 야스쿠니 신사를 새벽 4시경에 불을 질렀다. 범행 직후 대한민국으로 도피했고 이 곳에 체류하는 동안 외할머니가 예전에 머물렀었던 경상도 지역을 방문했고 외증조할아버지가 사망했던 서울 서대문형무소 박물관을 들렀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나라를 돌아다녔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야스쿠니 신사 방화 사건 이후 며칠 되지 않아서, 2012년 1월 6일, 다시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관 방화를 시도한다. 이때에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여 화염병을 던지려 했다. 1920년대 일제 횡포의 상징이었던 조선 식산은행과 동양척식 주식 회사 두 곳에서 거사를 일으켰던 의열단의 나석주 의사가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안탑깝게도) 시도에 그쳤고 결국 우리나라에서 체포되어 현존건조물 방화미수죄로 짧은 기간의 징역형을 살게 된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12년 5월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한다.




정치적 범죄인 불인도 원칙


우리나라 재판부는 리우치앙이 저지른 범죄를 '정치적 범죄'라 규정하고 이는 범죄인 인도 거절 사유 중의 하나이므로 일본 정부에 인도를 거절하기로 결정한다. 우선 리우치앙의 범행 동기가 일본 정부의 과거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노가 원인으로 리우치앙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행한 범죄가 아니라는 점과 범행 당시 그의 정치적 신념을 강하게 어필했다는 점을 고려했다. 또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우려 했다는 점을 고려해 테러범죄가 아님을 인정했다.


한국, 중국, 일본 간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야스쿠니 신사는 일반 종교적 건물이 아닌 정치적 상징성이 다분한 시설이라고 인정했다. 리우치앙의 범행이 '정치적 대의'를 위해여 행해졌다고 인정하는 재판부의 결정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번 손 씨 사건의 강력한 여론의 영향으로 범죄인 인도 심사결정에 대한 불복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조금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2001년에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다. 대법원은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은 국가에서 형벌권의 확정을 목적으로 하는 결정이 아니라서 불복을 위한 신청을 불허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런 재항고 절차 없음을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굵직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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