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서 투자기업으로
나는 성적에 맞춰 인문계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사범대에 못 들갔다. 그래서 들아간 대학이라 그곳에 어떠한 애정도 없었다. 자퇴부터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학부제로 학교가 운영되는 덕분에 '디지털콘텐츠학과'로 전공을 삼을 수 있었고 그 이후부턴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매료되면서 학교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미대는 아니었기에, 그림을 엄청 잘 그리거나 센스가 좋은 교수/친구들이 주변에 많진 않았지만 나름 그곳에서 나의 취향과 실력을 발견하고 성장해 나갔었다. 그러던 와중 학부 3학년 때 갑자기 엄청 큰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까? 나는 왠지 모르게 변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정말이지 뜬금없고 맥락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회부 혹은 정치부 기자나 변호사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꽤나 한 적이 있었다. 따지고 물고 늘어지는 글과 토론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해보지 않은 것은 그 일이 기본적으로 누구의 불행으로 유지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미술, 디자인. 예술이 좋았던 건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작업물로 위로와 편리함, 즐거움 등 긍정적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았다. 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빠르게 변하고 정형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상업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그저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더 시끄럽게 하고, 버려질 쓰레기 만드는 것이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 생각을 학부 3학년때 했지만, 난 변화를 실천하지도-그 고민을 더 이어나가지도 않고 계속 멍청하게 현 상태를 유지했다.
어영부영 지내가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또다시 어영부영 개인 작업 활동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졸업을 하고 디자이너로 취준 중인데 어제는 투자 기업에 면접을 보고 왔다. 사회적 기업을 전문으로 투자하는 회사라, 철학이나 임팩트. 영리와 비영리를 오가는 질문들을 듣고 답했다. 늘 사업성만을 생각했던 지난 면접들과는 확연히 대비되었던 시간이었다. 아직 결과는 안 났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어느 때보다 간절한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라고 여겨지기에 더욱더 확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라는 태그를 과감히 버려도 좋을지, 빨리 알고 싶다.
나는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쩌면 디자이너보다 다른 쪽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지. 우선 기회를 잡아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회가 희미한 세상이지만, 오늘도 난 그 기회를 바라며 하루를 버티고 있다.
모두 우중충한 화요일을 무탈히 건너가길 바라며, 오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