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ere me
2012년에 개봉한 영화 ‘얼음강’은 민용근 감독이 제작, 배우 공명, 박주희 등이 등장하며 ‘어떤 시선’이라는 3부작 독립영화 시리즈중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공명이 연기한 주인공 선재가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면서 겪는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과 아픔을 그리고 있는데, 선재는 자신이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병역을 거부할 것을 자신의 엄마에게 입대 전날까지 숨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엄마가 이를 철저히 반대할 것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인데, 그의 엄마는 선재처럼 종교적 신념으로 양심을 거부한 자신의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 그와 별거까지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선재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고,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말 대신 그간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진솔하게 적은 편지로서 엄마에 이해를 구할 계획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입대 예정일 전날 군 입대 통지서를 엄마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화가 난 엄마는 선재의 머리를 억지로 밀며 선재를 군대에 보낼 준비를 혼자 분주히 한다. 하지만 결국 선재는 입대 예정일 당일 군대가 아닌, 자신의 일터인 카센터로 향하고, 말없이 사라진 선재를 애타게 찾는 엄마는 카센터 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과정에서 카센터 사장님은 카센터에서 묵묵히 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선재를 발견하는데, 카센터 사장님은 그런 선재에게 ‘남자가 왜 군대에 안가!’라며 윽박을 지르며 선재를 몰아 부치고 선재의 엄마가 이곳에 오실 때 까지 선재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선재를 카센터에 가둬둔다. 카센터에 도착해 그 사실을 안 선재 엄마는 카센터 사장님의 뺨을 때리며 ‘왜 죄 없는 얘를 가둬요’라고 말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양심과 소수자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우선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양심’의 구체적 개념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양심적 병역 거부자’란 종교적 이유를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가치관, 신념,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자를 일컫는다. 한국에선 1945년 광복 이후 최근까지 입영 및 집총으로 처벌을 받는 사람은 2만 명에 이르고, 이중 99%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이며, 최근에도 해마다 500명씩 형사처벌을 받는다. 병무청 통계(2007년~2016년 10월)를 보면, 이 기간 입영·집총 거부자 5532명 중 5495명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종교 없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거부자는 37명이다. 더불어 현재 한국에서는 작년 11월 처음 대법원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병역 거부에 대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바 있고, 작년 12월에는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지들에 대한 대체방안을 확정해 이에 따라 최종 법안이 마련되면 내년 1월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한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된다. 더욱이 러시아, 스위스, 중화민국 등 50개 이상의 국가에서는 신념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여 면제하거나, 그들에 대해 대체복무제로 병역을 대신하도록 하는 등 법률로서 권리를 보호해 주고 있다. 현재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터키가 유일하다. 최근 이들 나라들에 대해서도 유엔인권위원회와 유럽인권재판소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국제 법에 위배되는 것이고 양심과 사상,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잇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분명 법률, 행정상으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는 그들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난 ‘양심’이라는 단어와 ‘소수자성’에 대해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여기서 ‘양심’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해석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잘못 해석할시 군대에 간 남성들은 ‘양심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오해를 최소화하기 최근 현재 헌법재판소에선 2004년 8월에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 규정한바 있고, 그럼에도 이 ‘양심’이라는 단어가 국민정서상 계속해 오해를 부르니, (우리나라 대부분에 병역 거부자들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점을 감안하여) 앞으로 공식 명칭을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서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 거부자’로 채택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더불어 우리 헌법 19조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내면적 기초가 되는 각자의 윤리의식과 사상을 자유로이 형성하고 또 그것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아니할 자유와 더불어 그 윤리의식이나 사상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아니할 자유를 말한다. 양심의 자유는 성격상 자연인만이 그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처럼 ‘양심’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 확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보호 받아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이를 규제하고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기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쉽게 판단해서도, 폄하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론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소수자성’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현재 우리나라의 남성은 건강상의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모두 군대를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 입대를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의 소수자성에 대해 알아보기 이전에 우선 그들의 사상이 사회적 소수가 된 이유부터 알아보자. 병역을 거부한다는 사상은 왜 소수에게만 나타날까? 첫째,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다. 분단국가, 휴전 국이라는 특수한 타이틀은 ‘남성은 군대에가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라는 강력한 인식을 만들었고, 이에 반하는 이들을 쉽게 비애국자로 만들었다. 두 번째는 전체주의적 사고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사회로부터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사회로부터 계속 ‘남성=군대’라는 인식을 학습 받아왔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학교는 늘 하나의 사고가 아닌 여러 소수자들의 사고, 행동, 판례들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토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 가지 길에 대한 학습과 강요만 지속했다. 실제로 양심적 이유로 인해 병역을 거부하는 일은 그 역사가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실을 안 사실은 불과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그 경로도 개인적 경험에 의한 일이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개개인들의 다양한 사고를 존중해주기 보단 하나의 사고와 프레임을 조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단일 된 사고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론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 때문이다. 나는 무교이기 때문에 기독교 종파에 대해선 다소 무지하지만, 이번 에세이 자료조사 과정에서 다른 많은 기독교 종파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선 그들을 이단으로 인정하진 않는다.)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99%가 ‘여호와의 증인’인 점을 감안하면, (영화 속 선재도 ‘여호와의 증인’) 우리사회가 (특히 타 기독교 종파 신자들) 그들에게 왜 그토록 냉담한 반응을 취하고, 이가 우리의 다양성 관용 태도에 중요한 가로막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는...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라는 2016년 헌법재판소 판례와 같이 우리가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가 그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시킬 순 없다.
‘얼음 강’이라는 영화에선 선재가 병역을 거부하면서 생기는 갈등과 아픔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고, 주인공 선재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자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전체에 부합하지 않은 비주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때로는 불효자가, 때로는 사회 부적응 자가 되었고, 심지어는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이외 다른 소수자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럼 여기서 난 당신의 생각과 처지는 늘 전체에 부합한지 물어 보고 싶다. 이글의 첫머리처럼 난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쉽게 배척해 나갔던 우리와 우리 사회 태도에 의문을 던져 보고 싶다. 혼자 위태롭고 추운 얼음 강을 걷는 선재의 모습은 선재만의 모습이 아니며 어쩌면 나, 우리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이며, 설령 지금 그렇지 않다고 한들 언제든지 그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의 양심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아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동시에 유동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양심’이 ‘얼음 강’과 닮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얼었던 얼음이 녹듯, 우리 주변 환경이 우리 개인의 양심을 무너뜨리고 좌절 시킬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저마다의 양심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와, 저마다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글의 제목을 ‘저마다의 얼음 강’이라 지었다. (‘If you were me’라는 소제목은 영화 소제목이다. 하지만 나의 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개인의 양심. 즉 마음의 소리에 따라 움직일 권리를 갖는다. 그 움직임이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개인의 고유한 마음의 목소리에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우리 헌법에선 전체, 공공의 이익, 국가 안전 질서를 위해 개인의 권리는 제한 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의 내용을 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제도가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포용하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길목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불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소수자들 역시 우리 사회에서 다시 재조명 되고, 존중받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