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오 <사랑으로>
혁오 밴드의 <사랑으로> 앨범은 2020년 1월에 발매된 EP이다. 앨범 이미지는 볼트강 탈만스의 <Osterwaldstrasse>이란 작품으로 화단의 여러 식물들이 한곳에 섞여 있는 사진이다. 모습은 다르지만,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은 사회적 다양성의 문제를 환기 시킨다. 그 한 장의 사진으로 대표되는 <사랑으로>는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공존의 힌트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와 함께 살펴보자.
첫 번째 곡, “Help”는 홀로 배낭을 메고 여정을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때 그 길은 다소 불안하고 외로워 보인다. “마침내 난 혼자가 되었고, 자유야”, “난 길을 잃었어”라고 말하는 화자는 ‘신’에게 말을 건넨다. “신은 절대 실망 시키지 않을 거야”라는 말 뒤 정적은, 그 믿음이 철저히 배반당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도움’이란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서 노래의 제목이 “help”라는 것도 재밌다.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그저 신, 즉 초월적 존재의 구원만 바라는 망가진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곡, “Hey Sun”은 “기다림이란 절대 끝나지 않고 항상 여기에,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나, 끝은 여기에, 또 다른 끝의 시작”라 이야기 한다. 이때 ‘기다림’이란 단어가 첫 번째 곡에 등장하는 ‘신’을 연상시킨다. 그는 더 이상 신을 기다리지 않기로 한 것 일까? 이어지는 곡, “Silverhair Express”는 “알아 가거나, 잊어가거나, 사랑하거나, 슬퍼하거나”, “잊어 가거나, 잊혀 가거나, 사랑해야지, 슬퍼하지 마”라는 가사만 등장하는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구절 ‘잊고 잊혀 감’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지” 파트는 앨범명 <사랑으로>를 환기시킨다.
강한 드럼 소리와 시작되는 “Flat dog”는 빠르게 달리는 사회 속에서 하루를 아끼려다 오히려 하루를 버리게 된 사람의 쓸쓸함 드러난다. 이는 빠르게 변하는 음악 시장에서의 밴드 혁오를 떠올리게 한다. 끝부분에 뒤엉키는 사운드들은 그 빠름 속 적응하고 싶어 하는 개인의 ‘애씀’을 떠올리게 한다. 이때 결국 음성은 사라지고 정체 모를 기계음만 남으며 끝나는 결말에, 우리가 느끼는 ‘공허’는 바로 다음 트랙과 연결되어 표출된다. 다음 곡 “World, of the forgotten”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울하다. 가사를 살펴보면, 기억 속에서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해 내고 붙잡고 싶지만 그럴 힘이 없는 지친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저 “너가 누구였지, 어디 가려는 거야”라고 홀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누군가를.
단연 <사랑으로>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마지막 곡, “new born”은 개인적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혁오는 홀로 어둠 속에 있으면서 괜찮은 척 휘파람을 불고 있는 당신에게, 주의를 둘러보라고, 우리 함께 원을 만들자, 말을 건넨다. 이때 ‘원을 만들다’는 ‘무리를 만들자’라는 의미, 즉 ‘연대의 의미’를 내포한다. “내가 손으로 묻었던 모든 것, 내 침대 옆으로,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지”라며 울리는 목소리는, 그들이 만든 원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다. 이때, ‘침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변화 하는 행위’를 ‘일상’으로 환원한다. 후반부 천천히 작아지는 소리 들은, 다시금 태어나는 일은 매우 더디다는 것을, 끝 베이스 독주는 변화함에도 우리의 본질은 고유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사랑으로> 앨범의 테마를 하나 정해야 한다면, 나는 ‘속삭임’으로 하고 싶다. 혁오가 리스너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 되었든, 이 앨범은 결코 그것을 강하게 ‘주장’ 하지 않는다. 되려 난해하고, 추상적이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그 미로 안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결국 ‘사랑’인 것일까? 그 ‘사랑’은 무엇인 걸까? 궁금하다면, 앨범을 차례차례 들어 보자. 깔끔한 답 대신, 얻게 될 ‘무언가’가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 본 글은 글쓴이의 주관적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