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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09. 2021

Ep.1 생각지도 못한 전화 한 통

2020년 11월 27일 오후

2020년 한 해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누구에게나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특수한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전에 겪었던 조류독감, 메르스와는 차원이 다른 코로나라는 전염병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고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일상생활에 예기치 못한 통제가 발생하였다.


최신 개봉 영화가 있을 때마다 늘 정기적으로 출근도장 찍듯이 다녔던 영화관, 점심시간 때마다 가서 개운하게 땀을 흘릴 수 있었던 헬스장 등은 갑자기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고 구내식당에는 자리마다 투명 칸막이가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황사 때도 잘 쓰고 다니지 않았던 마스크를 언제 어디서나 쓰고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출퇴근할 때, 회사에서 회의할 때 마스크를 쓰고 말하는 것은 처음에는 너무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가 어느새 일상생활이 되었다.


군대에 있던 시절 IMF 위기가 몰아닥쳤던 이후 코로나는 대한민국의 일상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비단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이다.


내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2020년은 사회적으로 불어닥친 위기와 달리 유난히 좋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20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청약통장을 통해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되었고 (물론 중도금 마련을 위해 힘들게 고생하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너무도 힘들었던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악착같이 버텨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성과를 인정받은 덕분에 영국으로 연말에 주재원 발령을 받아 이동할 예정이었다.


7월부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평일에는 새벽 퇴근이 기본이었고, 주말에 나와서도 밀린 업무들을 처리해야 했다. 집에 오면 늘 가족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만 보고 지친 몸을 바로 눕히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추석 연휴에도 하루만 빼고 매일 나와서 프로젝트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타이트한 일정이 당연한 일상처럼 되풀이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힘들었던 과제들이 하나둘씩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과 희열을 느꼈고 이 프로젝트만 마무리되면 영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희망이 나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프로젝트 진행 도중 가끔 영국 법인에서 연락이 와서 슬슬 들어올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을 때에도 사실 본격적으로 영국에 대해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주재 발령 나는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매일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업무들에 대응하느라 영국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내심 사치라 여겨질 정도였다.


여름과 가을 내내 고생한 결실이 하나둘씩 맺어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프로젝트 업무로 미뤄둔 건강검진도 11월 23일이 되어서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체중을 재보니 무척이나 충격적인 수치가 나왔다. 물론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반주를 곁들여 저녁 먹는 일도 잦아지다 보니 체중이 늘어난 것은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작년에 입고 다녔던 바지들을 대부분 입을 수 없다 보니 살이 찐 건 알고 있었지만 1년 사이에 13kg나 늘어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체중 결과를 보자마자 다른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바로 체지방까지 측정되는 체중계를 핸드폰으로 주문하였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 더 충격적인 결과는 체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건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11월 27일 금요일, 전날 밤에 프로젝트 관련 긴급 이슈를 대응하느라 새벽 4시에 퇴근해서 점심시간이 돼서야 출근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후에 프로젝트 잔여 업무 대응을 위해 회의를 하던 도중 건강검진을 진행했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O 고객님이시죠. 건강검진 결과 중에 폐에서 이상이 발견되어서요.. 전문의를 통해 확인이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언제 시간이 가능하세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듣고, "글쎄요.. 다음 주 목요일 정도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바로 병원에서 "가능하면 시간을 빨리 잡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무언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네.. 그러면 다음 주 월요일 11월 30일 오전으로 시간 배정 부탁할게요." 이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병원에 걸어서 혹시 오늘은 병원 방문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이미 예약이 다 차서 월요일에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무언가 찜찜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별일 아니겠지라는 기대감을 의식적으로 증폭시켰다. 왜냐하면 이제 힘든 프로젝트 마치고 영국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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