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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an 09. 2021

Ep.2 내가???

2020년 11월 30일

건강검진 이후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한강 조깅에 나섰다. 러닝 앱을 열어보니 6월 이후 거의 5개월 만에 조깅을 나온 것이었다.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숨이 가빠지면서 살이 확연히 쪘음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10km를 뛰었다. 그런데 더 이상 되돌아올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다시 운동하고 먹는 거 조절하다 보면 금방 살이 빠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1년을 주기로 살이 빠졌다 쪘다를 반복했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3개월 만에 15kg를 감량했는가 하면 올해처럼 한꺼번에 13kg가 늘어나는 등 기복이 심한 상태가 반복되었다. 그나마 작년과 재작년은 살이 빠진 상태를 유지했는데 올해 고삐 풀린 지방들이 내 몸을 휘감는 상황이 또 반복되었다.


모처럼 뛰고 집에 들어와서 체중을 재보니 건강검진했을 때보다 2kg이 빠진 것으로 나왔다. 역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살을 뺄 수 있다는 혼자만의 '다이어트 부심'이 발동하였다. 


그리고 다이어트할 때 즐겨 마셨던 미초 세트를 집에 와서 바로 주문하였다. 그런데 와이프가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주문하면 영국에 언제 갈 거냐면서 핀잔을 줬다.


모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11월 30일.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 소견서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병원을 예약했는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강남 성모병원은 12월 중순까지 예약이 다 되어있다고 해서 다른 가능한 병원들을 알아봤다. 서울 삼성병원이 12월 8일에 예약이 가능해서 시간을 잡았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당장 당일에 병원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한 군데만 더 알아봐 달라고 했다. 영국 비자 신청을 위해 결핵검사를 받았던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당일 진료가 가능한 걸 확인해서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가 오후에 다시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앞은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과 병원 방문한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이었다. 건강검진 센터에서 받은 소견서와 PET CT 촬영 영상을 접수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빨리 별일 아니라는 결과를 듣고 영국 갈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진료 차례가 돼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도대체 어느 병원에서 PET CT 같은걸 찍냐고 건강 검진한 병원을 나무라듯이 얘기했다. 속으로는 '아, 별 증상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은 것도 잠시 뿐, 의사 선생님이 PET CT 영상을 보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였다.


계속 "나이도 젊은 사람이.."를 반복하면서 심지어는 나보고 유해물질 있는 환경에서 근무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황당해서 "아니요. 사무직인데요. 최근에 야근을 좀 많이 했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야근은 별 상관없다고 하면서 흡연을 하는지 나한테 물어봤다.


흡연... 고3 2학기, 재수, 삼수 시절, 대학교 시절 그리고 군대에 있을 당시 가장 많이 담배를 몰아 피웠다. 그리고 난 후 2003년 첫 회사에 입사한 직후 6개월 동안 끊었다가 잠시 피웠고, 아예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는 13년 동안 담배를 끊고 지내왔다. 그런데 2017년부터 간헐적으로 다시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6개월 피다가 6개월 끊었다가를 반복했다. 2019년 7월 담배를 다시 끊었고 그 후 1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다가 올해 7월부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시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바로 폐 조영 CT를 찍어야겠다고 하시면서 심각하다는 듯이 얘기하였다. 그런데 자꾸 말을 흐리멍덩하게 전달해서 계속 머릿속에 남은 의사 선생님의 멘트는 "나이도 젊은 사람이.." 그 한 마디뿐이었다.


물을 포함한 금식 시간이 최소 4시간은 되어야 한다고 해서 당일 저녁에 폐 조영 CT 검사를 예약했다. 와이프에게 바로 전화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자꾸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 불안함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와이프한테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저녁에 폐 조영 CT를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무실에 다시 갔다가 나오기도 애매하다고 얘기했더니 와이프가 주변을 걸어보라고 해서 그래 어차피 시간 때울게 마땅치 않으면 건강에 좋은 걷기라도 해 보자고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병원에서 탄천까지 왕복으로 계속 걸었다. 걸으면서도 자꾸 찜찜함을 넘어 불안한 기분이 밀려와서 계속 속으로 내리쳤다.


탄천 길을 왕복으로 걷다가 다시 나와서 코엑스, 선릉역, 역삼역을 거쳐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찜찜한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시 횡단보도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는데 누군가가 급하게 길을 건너려고 하면서 나를 다른 자리로 옮기듯이 밀치고 지나쳤다. 기분이 확 나빠지려 했는데 검사 앞두고 쓸데없이 헛된 곳에 기운 빼지 말자고 생각하고선 그 사람이 건드렸던 팔만 먼지 털어내듯이 툭툭 쳐냈다.


신경이 어느새 곤두서 있었나 보다.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다니.. 다시 병원으로 와서 시간이 좀 나아서 대기의자에 앉아 회사에서 온 메일들을 열어보고 있었다. 메일 중에 팀장님이 비밀 참조로 보낸 메일이 있어서 열어보니 상무 님하고 팀장님이 올해 회사 공로상에 나를 추천한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보는 순간 울컥한 감정이 들이닥치면서 눈물이 어느새 눈가를 가득 메웠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폐 조영 CT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무척이나 짧게 진행되었다. 오후 내내 마음 졸이면서 걸어 다닌 시간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검사는 끝났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복잡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부디 별일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만 한가득 안은 채 병원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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