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선샤인 뉴먼소셜클럽 '휴식 박사과정' #1
꽤 오랫동안 평일 저녁은 없는 시간이었다. 퇴근하고, 밥 먹고, 씻고 정리하면 금방 열 시. 그리고 누워서 핸드폰을 열면 어느새 한 시라서.
분명히 누워있긴 했는데, 눈도 뻑뻑하고 팔도 아프고, 정신은 계속 깨어있는 느낌이다. 쉬긴 쉰 것 같은데, 정말 쉰 건가? 핸드폰을 안 하고 쉬는 법을 까먹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시즌 빌라선샤인에서 '휴식 박사과정'이라는 귀여운 클럽에 들었다. 휴식이 뭔지, 어떻게 하는 게 쉬는 건지, 다들 핸드폰 안 하고 뭘 하는지 궁금했다. 오티에 참석하지 못해 오늘이 첫 번째 시간이었다.
"휴식이 뭘까?"
'휴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눕는 것, 물리적으로 혼자가 되는 것,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만 떠올랐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주말을 보내고 나면, 하나도 못 쉬었는데 벌써 평일이라는 억울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오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주 다양한 쉼이 있더라.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는 것, 몸을 쓰지 않는 것, 감각을 살리는 것, 나를 즐겁게 하거나 위로하는 것. 그런 것들.
내 안에 있는 아주 다양한 욕구와 감정에 따라 필요한 '쉼'이 다르다는 관점이 아주 새로웠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어떤 날에는 친구를 만나며 쉬고, 어떤 날은 전시를 보며 쉬니까.
그동안 '잘 놀았다'고 말했던 것들이 사실은 '잘 쉬었던' 것이 아닐까? 얘기를 나누면서 휴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쭉 적어보았다.
- 에너지를 채우는 것: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을 때. 평화와 고요를 원하는 마음.
- 몸을 완전히 쉬게 하는 것: 누워서, 자거나 뒹구는 것. 하루를 통째로. 아무 소리 없이, 혹은 잔잔한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고.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게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다.
- 여행: 감각을 살리는 것이라서. 새롭고 낯선 경험이 있어서. 일상이 아니어서 좋다.
⁃ 나를 즐겁게 하는 것: 현대무용, 영감을 주는 장소, 바람/햇빛을 만끽하는 산책
- 나를 위로/위안하는 것: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으로 충족감을 느끼는 것
나의 휴식은:
몸과 마음을 루틴이나 무감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나의 모든 감각과 가능성을 허락해주는 것.
정서적으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
고민해볼 만한 지점들
클럽 리더 보라님께서, "무엇을 채우려고 이 활동을 하고 있나?"를 생각해보라고 하셨던 게 마음에 남았다.
휴식의 기능이 각기 다른 이유는 그것이 각기 다른 욕구로부터 '___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필요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누워만 있는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혼내는 그 마음을 더 들여다보면서, 어떤 욕구가 있는지 인식하는 게 중요하겠다.
오늘은 특히 '감각'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다뤄주셨다. 다섯 가지 감각 - 시각적 만족, 좋은 소리, 좋은 향, 촉각의 만족, 맛있는 음식 먹기 -에 관한 각각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면, 조금 더 빠르게, 더 효과적으로 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마음 챙김이 생각났다.
게다가 각각의 요소를 잘 조합하면 나를 돌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잘 쉰다는 것을 더 작게 쪼갤수록, 스스로 어떤 욕구와 감정을 충족해줘야 할지 정확히 알게 되겠지.
나의 쉼 목록
구체적인 환경과 상황으로 쉼을 분류해보고, 각자 자기의 쉼을 정리했다. 혼자 쓸 때는 첫 3가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몇 가지가 추가되었다.
내 휴식의 공통점은 맑은 날, 주로 주말 낮~저녁 시간을 가정한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혼자이거나, 아니면 아주 소규모의 사람들을 포함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궁금했던 동네에서, 주말 낮에,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걷거나 바람/햇빛을 느끼는 것이 좋더라. 평온, 안정감이 든다.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어떤 공간 - 카페, 샵, 예술 관련 - 에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감각을 최대한 살려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짧게라도 써서 남긴다.
원하는 옷을 입고, 한 번도 담아보지 못한 동작을 내 몸에 넣어보고, 하나하나를 익혀서 완성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와 짜릿함이 좋다. 춤추는 시간의 몰입감이 항상 기대돼!
자연 속에서 - 숲이 좋겠다 -, 감각을 열어두고, 낮 시간, 햇살이 좋은 때에, 보고, 듣고, 맡고, 만져보는 일. 감각이 가장 만족스러울 때에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긴다.
새롭고 낯선 맛이 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저녁 시간에, 나누어 먹으며 흐뭇해하는 일.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것으로만 꽉꽉 채워,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하루.
(회사에서는) 화분에 물 주기, 일하다가 갑자기 나가서 한 바퀴 걷기, 사람들에게 말 걸기, 오후 4시의 간식타임.
오늘의 소감
누워 있고,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만 휴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나도 참 잘 쉬고 있었구나 싶었다. 잘 못 쉬고,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늘 의심하는 상태였는데 쉼을 틈틈이 잘 채워뒀던 것 같아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쉬는 것마저 '성취'하려고 하거나 '완벽히' '잘' 쉬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던 건 아닌가 해서, 역시 나는 나에게 자비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책벌레였던 내가 대체 왜 쉴 때 글자 하나를 읽지 않을까 했었는데 드디어 이유를 알았다. 읽는 행위 자체는 여전히 습관처럼 남아있지만, '읽은 내용을 새겨야 한다'는, 일종의 일로 여기는 마음이 있어 그렇게 싫었던 거다. 석사 과정을 지나면서 '읽는다'는 동사를 잃어버렸는데, 아마 그런 이유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아 쉼 목록에서는 빠졌다.
여전히 궁금하고 고민인 것은, 평일 저녁 시간은 어떻게, '잘' 쉴 수 있는지다. 휘리릭 적어본 것은 대부분 주말이나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아마도 내 인생의 대부분일) 퇴근 후 몇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여러 가지로 실험해봐야겠다.
이번 주는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허락해주기"를 약속하며, 이제 쉬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