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1 '오은과 다독임' 기획자 후기 노트
몹시 기쁘고 벅차다.
첫 번째 텍스트클럽은 기획 그대로 텍스트 안팎의 이야기로 따뜻하게, 뿌듯하게 채워졌다.
기획하는 마음
텍스트클럽은 1월부터, 사실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아이디어였다.
텍스트를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 입으로, 귀로, 몸으로 읽어보는 것.
말 그대로 온 감각을 사용해 텍스트와 텍스트를 둘러싼 것들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채워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나에게서 나온 생각이므로 참 나다운 기획이면서도, 누구나 기꺼이 참여해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창작자와 소비자(관객)를 직접 이어 보고자 했다. 단, 강연이나 일반적인 북토크처럼 창작자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관객이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여야 했다. 일방향 콘텐츠는 이미 너무 많고,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는 만큼 쌍방향, 혹은 다층 방향의 콘텐츠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텍스트클럽에 참석하는 사람 모두가 마음에 담아 둔 말을 바깥으로 꺼내는 경험, 꺼낸 후의 후련함을 가져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텍스트로부터 시작된 무엇이 텍스트 바깥의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프로그램을 그렸다.
첫 번째 클럽을 열기 위해 유희경 시인님께서 부단히 마음 써 주셨다. 그동안 코로나19를 살짝 피해보려고 했던 시도만 세 번. 네 번만에 세상에 내어 놓은 나의 보물.
왜 하필 파랑새극장이냐면,
지난 11월, 공공일호에서 열렸던 #텍스트아케이드 의 행사 중 낭독과 공연이 결합된 프로그램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파랑새극장에서 처음으로 '낭독'이라는 콘텐츠를 담았던 프로그램이었고, 덕분에 우리 극장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파랑새극장은 '처음'과 '실험'에 꼭 맞는 공간이다. 김광석, 들국화, 동물원 등 유명한 가수의 첫 시작, 첫 단독 무대를 함께한 공간이니까. 개인적으로도 엄마 손을 잡고 연극을 보러 오던 극장이었기 때문에 몹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음악이나 연극 역시 텍스트와 긴밀한 관계이고, 확장된 버전의 텍스트라고 본다면 파랑새극장은 언제나 텍스트를 담아왔던 공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를 다룬다면 꼭 파랑새극장이어야 했다.
마음의 무게를 이야기하다
오늘 오은 시인님과 함께한 텍스트클럽에서는 마음의 무게를 이야기했다.
미리 사연을 받아 두어 희망, 두려움, 즐거움, 씁쓸함 같은 다양한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사연에 답을 달고, 시인님의 신작 <다독임>에서 몇 가지 글을 낭독하기도 하며 지나치게 무겁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경험이 만들어졌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스했던 오은 시인님과 중심을 지키며 콘텐츠의 대부분을 단단히 채워주셨던 유희경 시인님. 두 분의 케미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오은 시인님께서 나누어주신 이야기 중, 이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뭔가를 하면 결과가 나오잖아요. 고백 같은 거죠. '나 너 좋아해' 했을 때, '나는 널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라고 하면 실패지만, 어쨌든 답을 들은 거잖아요. 이런 거랑 똑같은 거죠.
누군가랑 가까워지기 위해서,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백이 필요한 거예요. 말이든, 편지든, 선물이든. 뭘 보내주면 답신이 올 거 아니에요. 아예 시도를 하지 않으면, 나는 여기에 정체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상태가 만족스럽다면 그렇게 지낼 수 있겠지만, 누군가가 궁금하고, 삶의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다가가고, 상처를 줄지언정 어떤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느낀 건, 결국 인생의 여러 국면을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한 때가 있기 때문에 불안하고 씁쓸한 때가 있는 거죠. 즐거움이나 행복이 있다는 건 공허함이나 씁쓸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늘 즐거울 수는 없으니까.
즐거움을 쉽게 느끼는 사람은 슬픔도 쉽게 느껴요. 공감력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도 쉽게 느끼지만, 나한테 나쁜 일이 닥쳤을 때도 많이 힘든 거예요. 공허함을 느끼는 것만큼 그렇지 않은 순간을 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시인님 말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관계를 이어가든, 멈춰 세우든 상처를 주는 일도, 받는 일도 불가피하다는 것을 아프게 배웠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나'가 나 자신을 다른 곳으로 이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 타듯 요동을 쳐도, 그래서 마음이 아주 불편해지더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감각과 다양한 마음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획자의 마음
사실 텍스트클럽을 준비하는 동안 몹시 긴장했다. 첫 기획이 아닌데도 이상할 만큼 불안했다. 더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지, 놓치거나 망칠 만한 건 없는지,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여러 파트너가 함께 진행하니까 실수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힘을 주기도 했다. 이번 주는 내내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설레고 긴장되는, 붕 뜬 기분이었다.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도 않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내내 극장을 서성거렸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하고, 유쾌하고,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사인회가 이어지는 동안 엄청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공연장 정리를 다 내일로 미루고, 우리 팀과 맥주 한 잔 하러 가는 길부터는 너무 신나고 기뻐서 계속 계속 웃었다.
텍스트클럽의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야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다. 우연한 기회로 유희경 시인님을 알게 되고, 우연히 뜻이 맞아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머릿속에서만 성대한 이벤트로 그치지 않았을까.
프로그램과 관련된 사람 모두가 많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잘 되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았다. 그야말로 물심양면이었다. 더욱 감사하고 벅찬 이유.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오은 시인님, 중간에서 모두를 모으고 이어주신 유희경 시인님, 품이 많이 드는 일도 흔쾌히 도와주신 난다 출판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관객, 그리고 든든하고 꼼꼼한 지지를 보내준 우리 팀에게 감사를 전한다. (감사한 마음이 넘쳐 새벽 세시가 넘도록 후기를 이렇게나 길게 쓴다.)
"다독이는 안녕"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극장 뒤쪽에서 흐름을 지켜보았다. 오은 시인님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의 표정에서, 공간을 가득 채운 분위기에서 언어로 옮기기 어려운 연대감과 따뜻함을 느꼈다.
머릿속에서만 그려왔던 이벤트가 내 눈 앞에서, 머릿속 그림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모습 그대로.
시인님께서 쪽수를 불러주시며 낭독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함께 책을 펼쳐 눈으로 귀로 텍스트를 읽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는데, 그 교감만큼은 담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다워 보여서 껴안고 소리치고 싶었다. 정말 정말 고맙다고.
그동안 고생하고 고민했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 같이 벅찼다. 기뻤다. 그리고 개운했다. 관객들에게 다독임 받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나에게도 다정한 다독임이 스며들었다. 다독임을 주고받으며 다음을 이야기했다.
안녕하시길.
다음 클럽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