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읽고 있어요, 나의 소란을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2 '박연준과 소란' 기획자 후기 노트

by 우주 oozoo

7월 첫 목요일, 두 번째 텍스트클럽을 마쳤다.


오래전부터 <소란>의 한 문단을 사랑했다. 그게 박연준 시인님 글인 줄도 모르고. 이번 텍스트클럽을 준비하며 책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다가, 또 한 번 심장이 쿵 떨어졌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는 파랑새극장의 추억이 언급되어 있었고,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사람을 일컬어 "한밤중에 펼쳐진 책"이라고 했다는데, 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랄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열렬히 서로를 읽어나간 거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 박연준 <소란>, 33쪽 발췌


티켓팅을 시작하고서 10분 간격으로 새로고침을 눌렀다. 하루 만에 40석이 모두 매진되었다. 여태까지 수십 개의 프로그램을 했었고 대부분 언제 다 팔리나 마음을 졸였던 터라 얼떨떨했다. 유희경 시인님께서 축하한다고 전화까지 주셔서 몹시 황송했고 프로그램을 좀 더 잘 다듬고 멋지게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프로그램이 끝나고 몇 가지 피드백을 받았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디테일을 챙길 수 있는 포인트였다. 입퇴장 사인, 조명, 의자 같은 부분들. 가끔 농담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은 눈감고도 하겠다고 말하는데 아직도 이렇게 보완할 부분이 있다. 이번에는 무대 위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도록, 그리고 무대 앞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는 디테일을 추가했다. 의자를 바꿨고, 시인님들께 직접 입퇴장 사인을 드렸고, 조명을 모두 꺼 잠시 암전 상태를 만들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근사하고 확실했다.



텍스트클럽이 텍스트와 텍스트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환영하는 만큼, 이번 프로그램 역시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로 가득 찰 수 있기를 기대했다. 지난번과 동일한 컨셉, 동일한 포맷으로 진행하니 크게 다른 점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되고 20분이 지났을 때부터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콘텐츠의 결이, 내용이, 그리고 그것을 쓰고 읽은 사람이 달라지니 첫 번째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달랐다. 분위기도, 차분함도, 유쾌함도, 혹은 슬픔과 공감의 농도도. 시인님은 책을 낭독하지 않은 대신 선물로 직접 준비한 손편지를 읽어 내려갔고, 무대 앞의 사람들은 텍스트를 들으며 시인님의 생각과 문장을 마음에 담았다.


동갑내기라던 박연준 시인님, 유희경 시인님 ⓒ 우주 OOZOO


두 번째 텍스트클럽이야말로 정말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들로 꽉 채웠다. 성숙, 관계, 사이와 거리, 사랑의 이야기들로 100분 가까이 마음을 나누었다. 이번 텍스트클러버들은 (관객을 '텍스트클러버'로 부르고 있다) 자기 얘기를 사람들 앞에 꺼내어 놓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 마음이 이래'하고 말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연에 이어 2부의 현장 질문 타임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경험과 고민이 주를 이뤘다. 다들 길게 얘기하고, 또렷한 고민을 꺼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는 합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부제를 '텍스트 너머의 관계 이야기'로 정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만큼 대부분의 이야기가 관계라는 주제 아래에 있었다. 모두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바가 더욱 직접적인 내용인 데다, 공간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 덕에 마음을 다소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다들 관계가 힘들구나. 다들 고민이구나. 그러니 더욱 관계에 결핍을, 어떤 막연한 욕구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아카이빙 영상을 돌려보고 리뷰 콘텐츠를 쓰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갔다. 두 시인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벽을 치거나 거리를 두는 행동을 나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느슨한, 혹은 작은 시도를 아예 포기하진 않는 것 같다.

다소 단편적이지만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관계가 힘들어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든 이어보려는 사람과 끊어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나는 전자의 유형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어떻게든 노력해보고, 내가 조금 상처 받거나 희생하더라도 관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왜'와 '어떻게'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아마도 가능성을 보려는 기질, 궁금해하고 관심 갖는 기질 때문일 테다.


상처 받는 것은 끔찍하지만 감수하고 계속 나아가 보는 것을, 올해는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어리고 철없는 고집일 수도 있는 '마음 나누기'를 지속해보는 것. 나는 그렇게 나의 소란을 열렬하게 읽고 있는 중이다.


리허설. 다정한 오은 시인님까지 ⓒ 우주 OOZOO


박연준 시인님께서 "여러분이 주인공인 것 같아요. 소통이 되는, 주고받는 듯한 느낌 너무 좋아요."라며 소감 나눠주실 때, '그래, 이거면 됐다' 싶은 뿌듯함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후기 몇몇에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따뜻했'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일시적이긴 해도 내가 항상 바라 왔던 따뜻하고 안전한 커뮤니티를 확인한 것 같아 내 마음도 몽글몽글했다. 게다가 첫 창작자로 무대에 올랐던 오은 시인님이 직접 예매하고 놀러와주셔서 어찌나 감동이던지.


계획대로라면 올해 다섯 번의 행사가 남았는데, 나머지도 차곡차곡 잘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래에 내 마음에 남았던 몇 문장을 옮겨 적는다.


"왜와 어떻게에서 멀어져 보기로 합시다."
"마음은 주고받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꺼내놓으면 제가 받고, 제가 꺼내놓으면 여러분이 받는 거죠."
"이 사람이 부족한 것도 많은데 그래도 좋은가.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완벽하게 성숙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싫지 않은 거. 그게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