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근로자도 꿈을 꾼다

by 믈름

고작 1년하고 11개월.

꽤 양심이 있는 ‘착한’ 상사는 이쯤에서 끝내고, 조금 더 양심이 없는 ‘나쁜’ 상사는 여기에 10일 정도를 더한다.



대기업 또는 괜찮은 중견기업의 정규직 자리를 꿰차지 못한 사회초년생에게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선택하는 삶은 2년짜리 시한부 인생이다. 흔히 기간제법이라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기간제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기 위해서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간제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훌륭한 의도의 법안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살길을 찾는 법. 대다수의 회사가, 심지어는 공공기관마저도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직원을 해고한다.


이렇게 한 번 길을 잘못 들고 나면, 아무리 울어도 화내도 하다못해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해도 신분이 높아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밀어 차고 겨우 얻어낸 2년의 여유 기간 내, 어떻게든 새로 기생할 곳을 찾아가야만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만원 전철을 타고 출근하고, 때때로 야근까지 하며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다시 만원 전철을 타고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뒷배 하나 없는 기간제근로자의 소임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매우 길고 지친다. 빛도 끝도 없는 외딴 길을 홀로 걸어가는 행동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바로 자기소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형화된 몇 가지 질문에 회사가 원하는 답변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으면 될 뿐이지만, 이 시간은 어쩐지 매번 나에게 기나긴 고통을 선사한다.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몇 가지 단어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사이, 내 양심은 저 멀리 어딘가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떠난 양심은 얄밉게 나를 비웃기나 한다. 그리고 묻는다. 정말 그래?

종종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거짓말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나’가 온 표피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숨구멍마저 메워버릴 것만 같다. 이렇게 거짓이 덮어버린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어차피 꾸민 나를 원한다면,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게 아닐까? 나와 외모가 유사한 사람, 아니, 나와 이름만 같은 사람, 아니, 어쩌면 그냥 다른 사람.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취업은 정답이 존재하는 시험의 일종이다.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고, 문제의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것에도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를 발가벗겨서 낱낱이 해체하고 나면 남아있을 것들. 나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열정과 가치관. 촌스러울 정도로 진부한 진짜 ‘나’를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에 나는 질리지도 않고 계속 상처받는다. 그래도 언젠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언젠가. 진짜 ‘나’로도 괜찮을 날이 과연 올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수년. 여전히 머물 장소를 찾지 못한 기러기 기간제근로자는 아직도 그런 유치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