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는 마치 인생의 성적표와 같다.
옛날 어디선가 들은 그 말이 꼭 틀린 것이 없었다. 여러모로 그렇다.
분향소를 열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할까? 인사? 위로? 쌍문동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분향소를 열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돈 계산이다. 망자의 넋을 기리는 행위는 그 다음 순서고, 생자의 슬픔을 다스리는 행위는 그 다다음이다. 무엇을 얼마어치 사고 또 무엇을 얼마어치 파는지 계속 숫자가 오고 간다. 장례식장 특유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목소리를 낮춘 채로 가장 절박하고 천박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주고받는다. 죽은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돈을 아껴야 하는 사람과 돈을 아끼고 싶지 않은 유족만이 남아 자꾸자꾸 계산기를 두드린다.
차라리 온전하게 원망하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서 나쁜 사람은 사망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징그러운 계산기조차도 악의는 없어서, 모든 숫자는 지극히 정당하다. 그리고 그것이 사무치도록 서럽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이별도 못 할 것이다.
모든 실랑이가 끝나면 언제 다퉜냐는 듯 예쁜 화환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법원이나 은행, 병원, 대학교, 어디의 사장님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름들이 죽 늘어진 화환을 보며 우리 모두는 생각한다. 이 사람은 성공적으로 잘 살았구나, 하고.
장례식장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슬멀 들어차 목을 조른다. 옛말에 정승이 기르는 개의 장례식에는 사람이 붐비지만, 정승의 장례식에는 개도 하나 없다고 한다. 주위의 인망을 쌓을 만큼 쌓은 정승조차 그런데 내 장례식은 과연 어떨까. 대학교에서 예의상 보내주는 화환 하나에 장례식장에서 보내주는 화환도 하나. 적어도 두 개는 되겠다. 이럴 수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옳아, 이 사람은 잘 못 살았구나. 잘못 살았구나.
정말 그럴까. 그런 걸까. 사람의 삶이 그렇게 평가될 수 있는 걸까. 이런 방식으로 측정되어도 되는 걸까. 그런 게 고작 우리의 삶일까.
나이가 들면서 주위 어른들의 잔소리가 늘고, 주위 어른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는 또 그 잔소리를 실감하게 된다. 혼자서는 외로울 테니 배우자를 찾아라. 장례식 상주는 있어야 하니 아이 하나 정도는 낳아라. 달갑지 않더라도 나를 몰아세우기 위한 조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조금은 안다. 그러나 어쩐지, 그러한 용도로 누군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성실한 것 같아 싫다.
죽음의 그림자가 얼핏설핏 보이기 시작할 즈음에 나는 기어코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영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 때, 자식 하나 없이 죽었다며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현실에 눈물짓게 될까. 그럴듯한 화환조차 없는 ‘실패한 장례식’이 되어 ‘실패한 삶’으로 기억될 때, 나는 슬프고 서러울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나의 변변치 못한 삶이다. 손가락질받는 것이 무서우니 차라리 장례식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에게도 내 삶을 실패했다고 단언할 자격을 주지 않고 싶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또 얼마나 불행했는지, 그것을 가르고 손가락질하고 논평하는 일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 되도록. 그렇게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는 홀로 한번 외쳐보련다.
그렇게까지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화환 하나 없어도, 나는 꽤 괜찮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