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어쩐지 못난 것들을 좋아했다. 미처 물들지 못해 얼룩덜룩한 은행나무 잎이나, 바닥에 떨어져 발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은 꽃잎, 혈통보증서가 없는 똥개는 물론 하다못해 털이 빳빳하게 서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길고양이 같은 그런 것들. 학용품은 언제나 문방구에서 파는 오백 원짜리 싸구려로 충분했고, 모두가 이름을 줄줄 외는 명품 메이커의 가방에서는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귀갓길 풍경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주인 모를 공터에 차단벽이 세워진 것을 보았다. 슬레이트 지붕과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덧대 만든 허름한 흉가는 단지 가려진 것만으로도 훨씬. 훨씬 더 쾌적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나는, 성가시게도 몇 가지 궁금증이 먼저 불쑥 고개를 들고 만다.
관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홀로 무성했던 풀더미들은 어떻게 정리되었을까?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던 그 폐가에도 과연 사람이 살았을까? 만약 살았다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쫓겨났을까? 못난 것들은 지워지고 예쁜 것만 남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미덕일 테지만, 내가 못난 탓인지 나는 그것이 때때로 잔인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해괴한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을 그애의 삶을 마냥 비웃을 수 없었던 이유가.
술자리의 중심에는 늘 그애가 있었다. 실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고, 그애의 이야기가 그만큼 우리의 악독한 취향을 관통했다는 소리다. 어느 한 명이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면 누군가 꼭 그애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것이 딱 그애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전국 각지의 이름 없는 대학으로 흩어진 우리가 마음 편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밑바닥 인생의 주인공 말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애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졌고, 그것을 기어코 낳았기 때문이다. 그애의 자리가 학교에서 사라진 날, 때로는 상냥하고 때로는 엄격하던 우리 담임 선생님은 모두에게 신신당부했다. 너희는 제발 몸가짐을 조심해서 신세를 망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날 이후로 그애를 만날 일은 없었지만,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나에게조차 소문은 종종 들려왔다. 하나같이 진위가 의심되는 살벌한 이야기였으나, 그것 또한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애의 시어머니는 정말 그림에 그린 듯 아들을 사랑했다. 소문에 따르면, 그애의 시어머니는 아이를 낳은 며느리가 아들을 위해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첩 반상을 해다 바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사람이었고, 삼대독자 남편님한테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화가 나는 사람이었고, 고작 대학교에 나서는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시시때때로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이 줄줄 내뱉는 남의 인생을 들으며 남처럼 웃고 남처럼 말을 얹었다.
‘흉가’를 보고 그애를 떠올린 건 사실 내 부끄러운 편견의 반증이다. 그래도 그 모든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그애의 삶이 온전히 평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어쩐지, 모든 객관적인 불행의 증거를 제쳐놓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지나가듯 본 그애의 프로필 사진이다. 그애와 그애의 아들과 그애의 남편이 함께 찍힌 사진 속에서 그애의 몸을 감싼 웨딩드레스는 순결한 하얀색으로 아름다웠고, 값비싼 화장을 한 그애의 얼굴은 불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차단벽 한구석에 설계 조감도가 붙어 있었다. 보기 흉한 집이 치워진 곳은 보기 좋은 공원이 된다고 했다. 공사장 인부들은 어지럽게 뒤얽힌 잡초들을 뿌리 뽑고 우아하게 모양을 잡아 키운 나무나 꽃을 심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는 짚단을 둘러주고, 더운 날씨에는 물을 뿌려주고, 양분이 부족할 때는 비료를 뿌려주고, 못나게 자랐을 때는 뽑거나 자를 것이다.
사실, 식물이 못나게 자라는 건 자라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한 결과다. 길게 웃자라는 건 햇빛을 보기 위해서고, 하얀 무늬가 못생겨지는 건 햇빛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은행나무 잎이 얼룩덜룩한 이유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년을 기약하려는 노력이다.
내 고등학교 동창들과 주위 어른들이 평했듯, 그애의 삶은 아마 못난 부류에 속할 것이다. 어쩌면 내 삶에 대한 평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정말, 완전히 만약의 이야기지만, 너무 꿈 같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너무 멀리 있어서 사이사이의 노력을 보지 못하고 못났다 평할 뿐이라면. 사실은 빛나고 아름다운데 그 빛이 너무 따가워서 못나 보일 뿐이라면. 못남이 우리 노력의 증거가 되어준다면. 그래주기만 한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위. 해가 능선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창밖을 보며 떠올린다.
그애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