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데 실패한 사람

by 믈름

회사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다.

사사건건 남을 가르치려 들고, 스스럼 없이 혐오 표현을 찍찍 내뱉는다. 자신과 다른 의견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무시하고, 타인의 흠결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 같다. 식당은 물론 대중교통에서도 큰 목소리를 줄일 생각일랑 없고, 언제나 자기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줄 안다.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고, 무신경하게 다른 사람의 상처를 헤집는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싫어하는 일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싫은 점을 찾고 싫어하는 점을 찾고 계속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그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일련의 행위는 정말이지 많은 힘을 요구한다. 얼마 없는 체력을 그런 곳에 낭비하고 싶지 않은데, 매번 싫어하는 것들만 늘어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거나 머리에 비듬이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이 짜증 난다. 아침 댓바람부터 바닥에 눌어붙은 오물도 꼴 보기 싫고, 금방이라도 굵은 빗줄기가 떨어질 것처럼 어두컴컴한 하늘은 물론 싫다. 대중교통에서 통화를 하며 요란하게 욕을 내뱉는 사람도 싫고, 오늘따라 늦게 오는 버스도, 유난히 빠르게 닳는 휴대전화 배터리도, 다리에 계속 부딪히는 장우산도, 아무튼 전부 싫다.


사실 그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 이를테면 남에게 참견하기 좋아하는 만큼 잘 챙겨주는 편이라는 점. 목소리가 크고 나서기 좋아하는 덕분에 늘 만남을 주선하고 주문이나 정산과 같이 귀찮은 일을 도맡는 점. 의견이 확고해서 회의 시간이 짧고, 마당발이라서 소식이 빠르고, 여행을 다녀오면 꼭 기념품 먹거리를 사와 모두와 나누어 먹는 점 등등.


그래서 그 사람이 좋냐 싫냐면,

그래도 싫다. 가능하면 평생 마주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다.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불평불만이 줄줄 넘쳐흐른다. 마치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싫어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인간은 내가 아닌 모두를 끔찍해한 덕분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 위치에 도달했음이 틀림없다. 남을 싫어하고 혐오하고 미워하고 급기야 죽이고 싶어 하다가 마침내 없애 버리는 것들은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 본능에 걸맞게 행동했을 뿐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존재하기야 한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가운데로 구호품을 가득 싣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끼니를 줄이고 폐지를 팔아가며 평생 모은 돈 몇 푼을 흔쾌히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은 사육장에 갇혀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불쌍한 동물들을 기꺼이 살려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그럼에도’가 떠오르는 비루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도 사랑보다 혐오가 먼저 보이고 만다. 정말이지 나라는 인간의 기저에 깔린 혐오는 사라질 낌새가 없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한다고 하지만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되었을 일이다. 굶어 죽는 사람에게 기부한다고 하지만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되었을 일이다. 위기에 빠진 야생동물을 구조한다고 하지만 애초에 죽이지 않으면 되었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너무 비관적이고 엄격한 걸까. 조금 더 순진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했던 걸까. 어쩌면 나는 사랑이란 달콤한 감정을 태어나기도 전에 저 멀리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남을 미워하는 존재로 태어나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평생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그런 삶에는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혐오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또 무엇일까. 왜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구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죽일까. 사람을 삶을 세상을 사랑하는 데 실패한 나는 그것이 늘 궁금하기만 하다.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이 세계가 그리고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덜 버겁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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