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나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린 시절, 나는 죽음이란 개념을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피부로 와닿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비로소 죽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죽음과 실제로 경험하는 죽음 사이에는 깊고도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그 차가운 현실 속에서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문득, 가장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은 현실보다 온도가 낮을 수 있겠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져 내릴 만큼의 슬픔이 밀려왔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강신주 철학자의 강연이 떠오른다. 그는 죽음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나의 죽음. 죽음이 찾아오면 고통은 사라지고,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그것은 우리와 무관하다고 한다. 둘째, 내가 모르는 타인의 죽음. 관계없는 사람의 죽음은 대개 숫자로만 인식되며, 큰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셋째,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 이는 가장 깊은 상실과 슬픔을 안겨주며, 사랑하는 존재를 잃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존재다. 어쩌면 이 유한성이야말로 매 순간의 가치를 부여하는 근원일지 모른다. 미래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불로(不老)와 불사(不死)가 가능해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한정된 시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라면, 죽기 전 조금이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게 된다. 나 또한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겠다고.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라틴어 문장들을 되새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Carpediem)" — 오늘을 살아라. 이 두 문장을 마음에 품으며, 오늘도 작은 행복과 감사함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