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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하리 Jun 14. 2020

쓰레기 같은 댓글

<82년생 김지영>은 젠더 분열을 조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82년생 김지영 (감독 김도영) 스틸컷 

개봉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관에 들어가고 가장 놀란 건 다른 영화에 비해 남자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포털사이트에서 본 댓글이 생각났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남성들의 회피 현상은 현재까지 자신들이 누린 당연한 권리를 잃게 될 것이라 겁을 내는 것이다.’라는. 요점만 이야기하자면 정말 쓰레기 같은 댓글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본질을 헤집어 놓고 82년생 김지영을 싸구려 영화로 추락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진다. 여자, 남자 그리고 부모세대. 그리고 여자도 남자도 부모세대도 김지영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자들도 김지영의 편이 아니다. 물론 그녀의 곁에서 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 직장 동료가 있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다기보다는 같은 치욕을 받는 ‘여자’로 표현된다. 


두 번째 관점은 남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과연 내가 남자였어도 이 영화를 불편한 감정 없이 볼 수 있었을까.’였다. 여자만을 위한 책, 영화로 낙인찍혀버린 것도 모자라 그 논란에 불을 지핀 느낌이랄까.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여러 남성들이 스토커, 몰카범 등 잠재적 범죄자로 등장한다. 멀쩡한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사회적 관습이 아닌 범법행위로 남성을 일반화한 게 아쉬웠다. 한 관점에 편향된 나머지 젠더를 떠나 우리 모두는 하나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더 흐려진 느낌이다. 참, 안타깝다. 


그리고 마지막 부모세대. 정확히 말하자면 조부모 세대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실상 진짜 문제는 이들이다. 정말 먼 과거부터 전해오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과 전통적인 여성관을 여성들에게 강요하기 때문. 똑똑하고 리더십 있는 여성은 단순히 시집가면 야무지게 일할 며느리 그 이상 그 이하의 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온 삶이 모든 여성의 삶의 표본인 마냥 이야기한다. 그 무지함이 참 슬펐다.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스틸컷 


영화 속에서 김지영을 일으키는 진정한 힘은 ‘가족’이다. 김지영의 가족은 서로의 입장에 대한 간극을 좁혀나가려 함께 노력한다. 그 노력은 한 사람이 아닌 같이 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이는 작가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페미니즘은 서로의 다양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그 의미가 한국사회에 스며들면서 변질됐지만 충분히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격변기일 뿐, 머지않아 모두를 위한 성숙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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