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자 골프 3] 골프의 길(도)을 찾아서
9번 홀 막바지, 항상 그린에 먼저 와 있던 김차장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 풍경에 취해 홀로 걷는 아름다운 풍경,인 줄 알았는데, 클럽을 챙기는 사이에 카트가 먼저 갔고, 그냥 걸을 만할 줄 알고 왔는데, 거의 등산 급이라 다리가 다 풀린다고 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김차장이 김사장과 내게 말했다. “둘이 시합해봐. 업 앤 다운으로. 재밌잖아. 부담 갖지는 말고. 흐흐.”
겨우 거짓말 같은 9홀의 충격에서 빠져나왔는데, 시합을 하라고? 좋아, 한 번 해보지 뭐! 전반처럼 치면 당연히 질 텐데, 희한하게도 김사장을 압승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미친 건가.’ 싶어 혼자 웃는 순간, 김사장의 드라이버가 불을 뿜고, 그가 외쳤다. “이게 다 내가 그려 놓은 빅 픽처라고!” 이게 뭐라고, 부담을 느낀 나는 있는 힘껏 쳐 산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이후 김사장은 페어웨이 중간으로 예쁘게 가고, 안기자는 청설모처럼 산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공을 찾았다. 10번 홀, 김사장 승! 역시 사업가라 긴장되는 순간에 더 강해지는구나! 그렇게 후반 초반은 김사장이 안기자를 압도했다. 친구들끼리의 유쾌한 긴장감이 약이 되었는지, 두 명 다 전반에 비해 스코어가 조금씩 나아졌다. 무엇보다 남자 셋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어느덧 3홀만 남겨 놓은 상황. 김사장이 2업으로 앞서나가고 있다. 안기자가 한 홀이라도 지면 시합은 김사장의 승리로 끝난다. 예전의 나라면, 속으로 이미 패배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승부에 대한 마음을 접고 할 일은 자신을 위로할 예쁜 논리를 개발하는 것. ‘친구끼리 재밌게 쳤으며 됐지 뭐.’, ‘김사장 힘들게 운전했는데, 이기면 좋지.’ 등등.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마흔이 넘어 인생 후반전을 시작한 안(安)기자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승부는 승부고, 지면 분해야지. 아름다운 패배는 있어도, 편안한 패배는 없다. 16번 홀에서 파를 하고, 17번 홀에서 1타 차로 이겼다. 이제 마지막 홀에 모든 게 달려 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김차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네 어떻게 이렇게 치냐. 진짜 골프 쌍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