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상태일 때 시험 보는 꿈을 꾸곤 한다. 이번 시험기간에도 내내 악몽을 꾸었다. 내용도 중요하지 않다. 책상에 앉아 시험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공포가 시작된다. 시험 문제가 보이지 않거나, 갑자기 시험이 끝나던가, 답안지가 백지상태이거나, 교실을 잘못 찾아갔거나. 대충 그런 설정이다.
이젠 머리가 녹슬었는지 연필로 쓰고 정리하고 줄 긋고 형광펜을 칠하고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봐야 겨우 머리에 남는다. 악몽까지 꾸는 날이면 불안해서 밥맛도 없을 지경이라 하루종일 공부만 신경 쓴다. 그 시험이 뭐라고, 시험 잘 봐서 뭐 한다고 대체 왜 이러나 싶다. 피폐해진 일상에 지쳐서 결과가 좋아도 별감흥이 없을 지경이다.
악몽에 시달릴 때에는 시험이 끝나면 뭘 할까를 떠올리면 조금 진정이 된다. 잔뜩 쌓아둔 책이나 읽을까, 잠이나 실컷 잘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시험도 끝이 났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객관식 시험들은 모두 A학점을 받고 학과 1등을 했다. 기분이 좋다가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종강하고 이틀 내내 떡볶이만 먹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보관 중인 취미용품들이 떠올라서 정리하며 중고거래를 했다. 마지막 시험과목이었던 철학 강의의 마지막 주제가 '죽음'과 연관되어서 그랬던가 싶다. 이유가 어쨌든 주변을 정리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니까......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파격가로 올렸더니 거래가 술술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같은 지역에 2건의 거래가 겹쳐서 혹시나 물건이 바뀔까 봐 신경을 쓰다가 한 곳 주소를 잘못 적은 것이다. 예를 들면 110호인데, 101호로 적은 것. 0과 1의 순서를 바꿔 적은 것이다.
송장 번호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해 놓고도 그분도, 나도 주소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어리바리한 사건에는 복선도 있었다. 어느 분식집 커피 메이커에 상단부에 물이 나오는 버튼이라고 크게 써놓은 글을 읽지 않아서 버튼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던가, 휴대폰을 어딘가에 방치하고 반나절 이상 못 찾기도 했다. 나를 믿으면 안 되었는데....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정보를 눈에 담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니 실수로 이어지곤 한다. 과목을 불문하고 교수님들마다 요즘 문해력이 떨어진다고들 강조하시던데, 스쳐 지나가는 문구들을 제대로 읽지 않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내가 뭐라 할 말이 있을까.
더운 날 관리실까지 왔다 갔다 하며 직접 물건을 찾아가진 그분께는 죄송해서, 물건 찾아서 괜찮다고 하시는데도 음료쿠폰을 드렸다. 그분께 죄송해서 울컥했고, 되려 위로해 주셔서 울컥했고, 실수하는 내가 짜증이 나서도 한참 울적했다.
이 머릿속에는 지우개가 있나, 돌이 들었나. 지금 하는 공부들을 꺼내 쓸 수는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유일하게 잘하는 거는 미련하게 앉아서 공부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숨만 쉬고 있어도 뒤로 퇴행하는 느낌만 가득하다. 기뻐도 시큰둥, 화가나도 그만, 흐리멍텅학다.
중년이란..... 쳇바퀴를 굴려도 공허한 제자리걸음만 간신히 하는 나인가 싶다. #혼자있고싶음 #다나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