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지우의 더러워진 흰색 크로스 백을 보고는 하나 더 사줘야겠다는 약속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다. 동생이 영상으로 보여주는 디자인들이 생각보다 별로 였다. "캉골에 가보는 건 어때?"라고 물었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불현듯 얼마 전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요조 산문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책 속에 저자는 말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장강명을 따라 하고 있다. 먹을 때는 김홍란을 따라 하며, 소비할 때는 허세과를 따라 한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허세과라는 사람은 일본 불매를 한다. 나도 한동안은 불매에 동참했었다. 다들 '유니클로만 안 가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때도 난 조용히 불매를 지켜왔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진 못 했다. 1년 정도만 유지하고 다시 원래의 소비 패턴과 좋아하는 브랜드를 마냥 놓을 수가 없었다. 조용히 불매를 지켜 온 나만의 약속은 아마도 끝까지 지켜 낼 수 없었을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였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내가 그런다고 뭐 얼마나 달라지겠어? 역시 이 브랜드 참 예쁘네! 대체할만한 브랜드가 없잖아!라는 혼자만의 공감으로 죄책감을 덜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나의 죄책감을 다시 꺼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정확했던 허과세라는 인물의 말 한마디를 옮겨 적은 산문을 읽으며 난 마음이 제법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일본 강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을 향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무척 화가 난다. 그러나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일본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것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싶다는 내용을 읽으며 내가 불매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순간과 그 마음이 무너지던 순간들이 교차했다. 안타까웠다. 그리 쉽게 무너져 버린 내 마음 자책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우리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유행처럼 잠시 불매를 선택하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다.
나에게 일본인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다른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나에게 전했다. 길거리에 붙어 있은 노노 재팬 (nono japan) 불매운동 현수막을 보면 불편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여행을 다닐 때도 참 즐거웠다. 직업의 영향으로 한때는 일어 공부도 했었고 일본 제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다시 떠오른 그 한마디가 무겁게 느껴진다.
일본 정부에 대한 행동에 우리는 불매를 선택했던 것이지 일본을 싫어한다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안부를 포함한 우리의 역사의 아픔으로 누구보다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을 우리인데 그 현수막 하나에 그런 마음을 사사롭게 한국인에게 표현했던 것은 그녀의 이기적인 마음은 아니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치 과거의 일본인들이 혹은 지금의 일본 정부가 그랬을 뿐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마치 일본인을 싸잡아 매도하는 한국인들에게 느끼는 서운한 마음을 꺼내 보인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때는 왜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를 했던 것인지 그러면서도 딱히 꺼낼 이야기가 없었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그런 와중에 동생이 사 들고 온 가방을 보며 '그냥 이번만 받자...'라는 마음으로 깊숙한 내면의 불편함을 애써 모른 척했다. 나는 왜 이 중심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일텐테 모른다고 둘러대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이건 아니다. 환불해!"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 이리도 찌질할 수가, 나는 소심하게 다시 외쳐 본다. 앞으로 허세과의 그 한마디를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