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로비니(Rovinj) 가는 길 그리고 밤의 로빈
이스트라 반도는 오랫동안 베네치아 영역이었으나 현재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세 나라에 걸쳐 있는 아드리아 해 연안의 반도이다. 로빈, 풀라를 비롯한 이스트라 반도의 도시들에 영향력을 가지고 등장하는 베네치아 공화국은 약 800년간 이 지역을 다스렸다. 그 베네치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베네치아는 5세기경 게르만족의 일파가 북이탈리아를 침입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고트족과 롬바르드족 등 야만족의 침입을 피해 몇몇 주민들이 바다 건너 섬마을 아드리아해의 해안가 척박한 석호로 피난했다. 그들은 새로운 정착지인 습지를 일구고 갈대밭에 말뚝을 박아 터전을 닦아갔다.
소금으로 시작한 상업은 운수업으로 확대되었고 이들은 점차 도시를 형성하여 약 7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체적으로 그들의 지도자를 뽑아 비잔티움 황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베니스 공화국이 되었다.
이들은 1201년의 제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더 많은 부를 쌓게 되며 강대국이 되었다. ( 십자군이란 이름으로 보호해야 할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에 쳐들어가 오히려 파괴하고 약탈한 문화재 노획물이 베네치아에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현재 아드리아 해 동부 연안에 면한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등 유명 관광지가 있는 달마티아 지역과 알바니아 연안에 속국을 만들었는가 하면, 숙적 제노바와의 네 번의 전쟁 끝에 승리하여 점차 동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엄청난 부를 거둬들이게 되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베네치아는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떠오른 한편,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과 경쟁하며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1498년 포르투갈의 디아스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 발견을 계기로 동방무역 독점을 해오던 자본가들로 단단히 덕을 보던 베네치아였지만, 마침내 이들이 철수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시기가 왔다. 이 바람에 공화국은 큰 변곡점을 맞는다.
은행은 파산하고 베네치아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300년을 잘 버텨서 오스만 정복 세력의 저지 역할을 해냈다.
18세기에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역이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트라 반도만은 줄곧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앞마당 격인 아드리아해에 오스만 세력을 들이지 않으려는 베네치아의 필사적인 방어의 결과였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1797년 나폴레옹 함대에 패하면서 종말을 맞이했다.
이와 함께 약 400년간 베네치아 왕국에 포함되었던 도시들과, 특히 크로아티아 중에서도 아드리아해 연안의 약 800년간 베네치아의 영향 하에 있었던 이스트라 반도의 도시들은 1. 2차 세계대전 결과에 따라 지배하는 나라들이 바뀌어갔다.
짧은 나폴레옹 통치 후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토로 넘어갔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들 제국들이 패전함으로써 승전국 이탈리아 왕국의 영토로 바뀌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탈리아가 패전국이 되면서,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및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유고연방을 이끌던 티토가 1980년 사망하자,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면서, 이스트라 반도의 대부분은 현재 크로아티아의 영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