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크리에이터를 안하고 회사원을 했겠어요?
이 체크리스트에서 대답 못 하는 항목이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자취방에서 뚝딱 찍은 것 같은 1분짜리 영상이 100만 뷰다. 편집도 없이 밈 하나 갖다 붙인 영상이 수십만 저장이다. 이걸 본 대표님이 생각한다. "저거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저비용 고효율. 대표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다. 그래서 사내 공모가 시작된다. "우리 직원 중에 릴스 나올 수 있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선언이 나온다. "우리 브랜드도 크리에이터처럼 해봅시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함정이 시작된다.
크리에이터처럼 릴스를 만든다고 결정했다. 이제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재미와 후킹을 강하게 가져가는 방향. 크리에이터가 잘 되는 이유는 제품 냄새가 나지 않아서다. 보는 사람이 광고라고 느끼는 순간 스크롤이 넘어간다. 그래서 재미에 집중한다. 그런데 이걸 브랜드가 하면 어떻게 될까. 대표님 피드백이 온다. "이거 보고 우리 브랜드인지 알 수 있어요? 브랜드다움이 없잖아요."
제품 소개를 강하게 넣는 방향. 그럼 브랜드다움을 넣어보자. 제품을 자연스럽게 녹인다. 그런데 소비자는 안다. 이건 광고다. 크리에이터 포맷을 입혔지만, 보는 순간 광고처럼 느껴진다. 저장도 없고, 공유도 없다.
어느 쪽을 택해도 대표님 피드백은 온다.
"이거 왜 이렇게 됐어요."
"저거 하루만에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저 크리에이터는 예산도 없는데 100만 나오던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더 어렵다. 크리에이터 릴스가 잘 되는 이유는 '저비용'이 아니라 '신뢰'에 있다. 소비자는 그 크리에이터의 취향과 판단을 믿기 때문에 본다. 브랜드 계정은 그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크리에이터의 형식만 빌린다. 형식만 따라한다고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크리에이터 플레이를 하기로 했다면, 세 가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조회수인가, 저장인가, 팔로워인가, 매출인가. 이 네 가지는 콘텐츠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조회수를 원한다면 후킹이 강한 밈형 콘텐츠가 맞다. 매출을 원한다면 구매 전환이 높은 공구형 크리에이터 포맷이 맞다. 지표 없이 시작하면 대표님 피드백이 올 때마다 방향이 바뀐다.
목표가 매출이라면, 팔로워가 많은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공구 전환율이 높은 크리에이터를 봐야 한다. 자기 브랜드를 직접 창업한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방식을 따라가는 게 맞다. 조회수 100만짜리 크리에이터가 매출도 높은 게 아니다. 지표에 맞는 레퍼런스가 따로 있다.
크리에이터 포맷으로 브랜드 계정을 운영하면, 그 포맷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핵심이 된다. 그 사람이 빠지면 계정이 흔들린다. 크리에이터 플레이는 사람에 의존하는 전략이다. 처음부터 이 리스크를 대표님과 공유해야 한다. 나중에 터지면 더 크다.
크리에이터 릴스 얘기가 나오면 꼭 따라오는 말이 있다.
"우리도 마스코트 있는데, 듀오링고처럼 하면 안 돼요?"
듀오링고의 올빼미 마스코트가 틱톡과 릴스에서 밈이 됐다. 엉뚱하고, 무섭고, 집착하는 캐릭터. 이걸 보고 많은 브랜드들이 생각한다. 우리 마스코트도 저렇게 하면 조회수 나오겠지.
아니다.
듀오링고의 마스코트가 밈이 된 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듀오링고는 수년에 걸쳐 캐릭터의 세계관을 치밀하게 빌딩했다. 올빼미가 왜 집착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말투를 쓰는지.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 원칙이 내부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그 위에서 트렌드를 접목했을 때 밈이 됐다. 세계관이 없는 마스코트에 트렌드만 입히면 어색하기만 하다.
마스코트 밈 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순서가 있다. 캐릭터의 성격, 말투, 행동 원칙, 세계관. 이게 먼저 완성되어야 한다. 밈은 따라할 수 있어도, 그 밈이 통한 맥락은 따라할 수 없다.
마스코트 플레이를 하겠다면, 그만한 빌딩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시작 전에 대표님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릴스를 잘 하는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있다. 릴스를 목표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브랜드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가 먼저 정해졌고, 그 언어를 담기에 릴스가 맞았기 때문에 릴스를 한 거다.
채널이 목적이 되는 순간 콘텐츠는 방향을 잃는다. 릴스를 하자는 대표님에게 "어떻게 만들까요"를 묻기 전에, "이 채널로 무엇을 달성하고 싶으세요"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 질문 하나가 몇 달의 시행착오를 줄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