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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삼 Jan 29. 2021

봄날씨같은 웰메이드 힐링드라마 <눈이 부시게>

혹은 충격적인 휴먼드라마 <눈이 부시게> 늦은리뷰


스포를 원치 않는다면, 

일단 정주행하고 오시겠어요...?

여기 와서 저랑 수다 떨어요.



가족이란 무엇인가. 늙는 것을 겁내지 않을 수 있을까. 죽기 전에나 알 수 있을까?



 마지막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혜자를 보는 안내상의 눈빛이 이해가 된다. 식스센스를 처음 본 관객들의 기분이 이랬을려나? 혹 어렵다고 느껴지더라도 끝까지 보다보면 정리가 될 거다. 아니, 사실 뭔지 잘 모르고 봐도 그냥 좋다. 요즘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당신이 가볍고 자극적인 드라마에 익숙한 만큼, 인생을 다른 관점에서 풀어내는 <눈이 부시게>는 더욱 낯설면서도 공감가는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전지적 치매시점' 이야기다. 알츠하이머. 나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다는 혜자의 말에 그간 이해 가지 않던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의 얘기를 반복한다. 그 때가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으니,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 예뻤을 때를 기억하며 그게 진짜 현실인마냥 지낸다.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모두 옛 사람들만 남으며, 증세가 심해질수록 환자는 점점 더 어려진다. 본인이 정말 그 시절 속 그 나이라고 믿기에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진짜처럼 하곤 한다.당사자에게는 진짜인거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치매노인들의 말과 행동을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치매걸린 사람의 관점으로 과감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람에 따라 후반부를 보면서 어렵고 불친절한 드라마로 느낄 수도 있다.


 애초에 이 작품은 김혜자씨를 위한 헌정 드라마라고 한다. 청춘의 시선으로 본 노인, 노인의 시선으로 보는 청춘, 각자의 관점과 애환을 두 혜자(김혜자+한지민)가 동시에 보여준다. 혹여나 몰입이 깨질까 걱정할 필요 없다. 두 혜자가 놀라울 정도로 한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우리 영수 없었으면 아픈 드라마를 어떻게 웃으며 볼 수 있었을까.



 주인공 혜자는 기자인 준하랑 결혼했는데, 준하는 사회운동하다가 경찰(훗날 시계할아버지)에게 고문으로 죽임당하고 후에 노인이 된 혜자가 치매요양병원에서 그 경찰을 다시 만나게 된다. 오빠인 줄 알았던 방구석 백수 영수는 알고보니 손자다. 아버지 안내상의 얼굴이 그토록 어두웠던 것은 엄마인 혜자가 치매에 걸려 딸 행세를 하고있어서... 


 대놓고 슬픈 드라마는 아니다. 조근조근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와중에 또 어찌나 웃기고 귀엽고 풋풋한지 배우들 하나하나 보는 맛이 난다. 


 담고있는 이야기가 많다. 세대갈등, 우리의 이기심, 가족이란 무엇인가 등. 나도 나이들면, 더 나이들면 저 모습이 내모습일까 싶어 주체할 수 없이 많이 울었다. (눈물 많은 수도꼭지같은 인간은 회마다 한번씩은 통곡하게 되니 웬만하면 집구석에서 혼자 봐야한다.) 지금 알 수 없는 것들은 죽기 전에나 알 수 있을까. 기억을 잃어가거나 병에 걸리게되면 알게 될까.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여운에 한동안 힘들었다. 연기와 연출, 대사 모두가 생생히 가슴에 남는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70-80대가 아직 한참 먼 것 같고 남의 이야기같지만, 사실 그리 멀지도 않은 나의 노년기를 미리 생각해보게 한다. 난 곱게 늙고 싶다.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곱게 살아가야 하는 거겠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시간은 흐르니까 다 지나갈테고. 힘든 시기도 해결할 수 없는 시간도 세월이 지나면 다 희석된다던데 나도 언젠가 그렇게 완전무결한 마음이 될까. 요동치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준하는 항상 어둡고 힘들고. 불쌍하고 안타깝고.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운, 다시 못 볼 남주혁의 인생캐. (나 너 사랑했냐?)



 이제 혜자는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 혜자를 힘들게 하는 준하의 억울한 죽음과 아들의 교통사고, 모든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자신도 준하가 있는 곳으로 떠났을 것이다. 이 평화로운 비극, 서글픈 해피엔딩에 펑펑 울고나면 결국 이상하게도 맘이 따뜻하고 차분해진다. 정주행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도 감정의 잔여물이 가라앉지 않았다. 잊을만하면 누가 자꾸 마음의 바닥을 헤집고 휘젓는 것처럼 폭풍같은 여운이다. 잊지 못할 장면들은 갈수록 더 생생하게 떠올랐고 더 많은 물음표를 던졌다. 


 안그래도 서른을 넘기고 나이듦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던 터였다. 내 미래가 될 지 모를 이야기를 엿들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젊은 시절을 계속 껴안고 산다고 한다. 과거의 영광 그리고 상처 모두. 나도 살면서 큰 아픔과 충격은 모두 어린 시절 겪었는데 지금도 안 잊혀진다. 누군가 그랬다. 상처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잘 데리고 함께 살아가는 거라고. 어른이 된 난 아직도 어린이였던 나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 같은데, 늙는다는게 문득 겁이 난다.


그 시절을 살아낸 이 세상 모든 혜자, 준하, 대상이에게 보낸 위로. 알게 또는 모르게 노인혐오에 물든 모든 이에게 보내는 편지.



 김혜자 배우는 그 나이에 20대 청춘의 반짝임도 미숙함도 어찌나 실감나게 연기하는지 진실로 존경스럽다. 눈이 어떻게 그렇게도 반짝이는지, 주름조차도 그저 아름다운지 참 신기해. 


 어린 혜자의 스무살 총기어린 눈과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말하는 늙은 혜자의 텅 빈 눈이 너무나 대비되어 슬프다. 머릿속을 계속 떠돌아다니는 슬픈 눈빛들로 한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드라마의 잔상이 이리 오래 남는 건 처음이다. 나이듦에 대하여 이토록 웃기면서도 눈물나게 생각하게 해 준 드라마가 있을까. 지금의 젊은날 허투루 보내지말라는 메시지일까. 각자의 이유로 우리는 모두 바쁘고 아프고 힘들다. 나에게 가장 눈이 부신 시간이 언제일까. 긴 노년을 위해 청춘을 사는 나는 오늘을 어떻게 준비하여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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