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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삼 Feb 05. 2021

대치동 강사의 고백 1

지도와 간섭의 경계 그리고 간섭과 학대의 경계

<어린왕자> 중에서 내가 가슴에 새긴 대목.






 곧 설날이다. 코로나 시국 속 어느덧 계절의 색이 여러 번 바뀌었다. 현강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지는 11개월째다. 중간중간 현강으로 전환된 기간을 제하면 아직 1년은 못 채웠지만 어쨌든 대충 '벌써 1년'이라 치고 끄적여보는 라이브 화상수업 후기.


 일단, 난감하다. 원치 않음에도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의 집안사정을 들여다보고 엿듣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나는 지난 1년 가까이 모르고 싶은 일들을 매일 목격해왔다. 그대로 라이브, 즉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화상 수업이기에, 시시각각 벌어지는 온갖 돌발상황들 속에서 나는 몇가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첫번째, 상상도 못한 다양한 이유로 집집마다 오디오가 시끄럽다는 점. 두번째로는 그 와중에 아이가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가히 기적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심각한 가정불화와 아동학대가 발생한다는 점.


 어른이 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어렸을 적 그토록 비판하던 사교육 업계에 종사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잘 맞았고, 직업만족도는 최상이며, 덕분에 일에 매진하며 어릴 적 상처들을 망각하고 치유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자격미달 학부모들을 목격할 때, 그들을 못 본 척 해야 할 때, 그들에게 해줘야 할 말을 삼켜야 할 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내가 하는 일에 환멸을 느낀다.



미우나 고우나 내 고향. 나의 일터이자 shelter, 대치동.



 우리 아이가 옆 집 아이보다 부족하다 호소하는 학부모들, 성에 차지 않는 성적표를 받아온 자녀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학대임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일상에서 자녀에게 학대행위를 지속하는 학부모들을 종종 겪는다. 미안하지만, 애는 아무 죄가 없다. 예외없이 부모가 문제다.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라... ' 소리를 누가 최초로 했는지 모르겠는데 애 키울 준비가 안된, 양육자로서 고민과 사유가 부족한 사람은 애초에 부모가 되는 선택지를 고르질 말아야 한다. 자신도 아이도 세상도 다 함께 불행해진다.


 나는 학교 선생도 아니고 학원 강사일 뿐이다. 지불받은 비용만큼 교육서비스만 잘 제공하면 됐지 굳이 애들 인성문제까진 개입하지 않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막상 심각하게 잘못된 parenting 사례를 볼 때면 당장 어디에 제보라도 해서 아이를 부모로부터 분리, 탈출시켜주고 싶은 심정이다.


 몇 년 전 <스카이 캐슬> 방영 당시 나는 세계여행을 다니던 중이었고, 드라마 종영 후 귀국했을 때 '베테랑 입시 코디'를 찾아대는 일부 엄마들로 인해 잠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궁금해진 나는 뒤늦게 유튜브에서 영상 클립들로 <스카이캐슬>을 접했는데, 100% 허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과장이지만, 최소 5% 정도는 현실 고증이라 볼 수 있겠다. 얼추 비슷한 세계가 존재하기는 한다만, 대치동에서조차 평범한 학생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세계일 것이다. 어쨌든 종영 이후에도 예서 책상(사도세자 뒤주 책상)이 한동안 불티나게 팔렸다는 게 재밌는 사실.


 상식적으로 애 키우려면 대치동에서 우리 애만 뒤쳐질텐데 어떡하냐는 주장도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고학력자, 고소득자 부모들이 많으며 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재산을 쏟아부을 각오하고 모여드는 곳이 대치동이다. 하지만 동네 탓, 사회 탓, 입시 탓 하기 전에 결국 부모의 욕심 때문이다.



어머님께서 다시 공부해서 수능 보시고 서울의대 가시는 게 더 빠릅니다.



 아이는 생김새, 체형, 지능, 기질, 예술적 감각까지 모든 방면에서 1차적으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모든 생물의 특성은 부모 유전자가 지배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이의 음악, 미술, 운동감각도 모두 유전이 크게 좌우함을 인정하면서도, 희한하게 수학(修學)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많다. 인정해야 한다. 기본적인 맞춤법을 어이없이 틀리면서 내 아이가 국어 공부 못 한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어의가 없다.'  


 많은 곳에서 강의를 해봐도, 고학년으로 갈수록 이상하게도 늘 중-상위권 정도에 가장 상식적이고 사회성, 융통성, 인간성 좋은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포진해있다. 되려 최상위권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학업을 제외한 나머지 방면에서 어디 좀 모자란가 싶은 아이들이 많으며, 반대로 최하위권 아이들 중엔 말 못할 가정 환경, 호르몬 문제, 마음의 병 등으로 인해 애초에 집중 자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지난 세월 일선에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얻은 무수한 데이터가 보여주는 팩트다. 괜히 부모가 쓸떼없이 신념과 욕심을 가져서 사교육에 올인하다가 훌륭한 아이를 모자란 아이로 만드는 사례도 꽤 있다.


 공부든 뭐든 학습자 스스로 최소한의 관심, 애정, 재능있는 분야에 투자를 해야한다. 그래야 효율이 난다. 피겨에 1도 관심없고 운동신경, 체력도 바닥인 사람 데려다 1000시간 10000시간 피겨 연습시킨다고 김연아처럼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애초에 그 많은 연습시간을 채우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까우며,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겨를 좋아하는 사람이 300시간 연습한것보다 못할걸. 공부도 똑같다. 공부가 고통스럽기만 한 아이를 애써 흐린눈으로 무시하면서 무작정 돈과 시간을 쏟으니 효율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공부해본 사람들은 다 경험해봐서 알거다. 똑같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도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 성적이 더 잘 나오는 것을. 애초에 진짜 싫어하는 과목은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는 것을.


 노력하면 다 된다는 것은 진실인가? 그렇게 무분별하게 '노력'을 강조하고 강요해도 되는걸까? 우리는 제발 이 노력의 함정, 노력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력 그 자체가 이미 재능이다. 적성에 안 맞는 일도 노력하면 다 된다고 맹목적으로 믿고 우기는 게 문제다. 이를테면 1년동안 하루에 열 시간씩 매일 공부했다는 학생들은 애초에 그게 할 만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거다. 재능이 없는 학생도 하루에 열 시간씩 공부하면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후자의 경우 애초에 매일 열 시간을 공부하는 것부터 일단 불가능의 장벽이다. 그렇게 절실하게, 장기적으로, 집중하고 실천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 부터가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력도 유전이고, 재능이다.


 대부분의 입시팔이는 노력하면 너도 된다고 한다. 장사해야 하니까 그런거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재능있는 학생들이 그만치 노력도 할 수 있는 거고, 돈까지 투자해가며 그들끼리 경쟁하는 것 뿐이다.


 엄마가 보기에 문제점이라고 생각되어 뜯어 고치려다가 있는 장점까지 다 사라질 수 있다. 잘못된 부모행세가 아이의 학창시절 추억, 좋은 어른이 될 기회까지 다 박살낸다. 크게 될 인재도 시들어 말라죽는 사례를 볼 때, 내가 이 곳에서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공범인지 방관자인지 포지션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는 모두 위대하고 모성애라고 무조건 신성한 것이 아니다. 자녀의 인생을 내가 진두지휘할 수 있을거라는 착각. 아이에겐 고문이고, 당신은 변질된 모성애의 감옥에서 분별력을 상실한 바보일 뿐이다.


 자식 교육에 헛된 집착과 환상을 가진 학부모들 덕에 사교육계가 굴러가고, 내가 먹고 사는 것도 맞지만, 강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프고, 현실을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학원은 그 어떤 문제의 해결책도 될 수 없다. 사교육의 최전선 대치동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현직 강사의 양심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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