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전날이었다. (전) 남자친구와 카톡을 하던 중에 남자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내일 자취방으로 친구들을 불러서 밥을 먹겠다!'라고 통보했다. 내가 잘 아는 그 비좁은 자취방에 굳이 사람들을 부르겠다는 것부터 이해가 가지 않고 마음에 안 들었는데,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그중 여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는 친구들이냐고 물었더니 오픈 카톡방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라고 했다. 나는 힘들게 내적 분노를 누르며 이 시국 필살기로 설득해보았으나, 남자친구는 사람 많은 밖보다 자기들끼리만 모일 수 있는 집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자기가 맨날 이러고 논 것도 아니고 처음인데 뭐가 문제냐는 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만신창이? 점입가경...?
내가 잊고 있었다. 원래 친구도 많고 여사친도 유독 많은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는 니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집에 부르는 게 싫어. 여자는 싫은 정도가 아니라 절대 안 돼. 단 둘이 아니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앉을 곳도 없는 니 좁은 자취방에서 여자랑 같이 있는 거 자체가 싫단 말이야.
그러나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리고 나온 말은 '넌 진짜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조롱 섞인 냉소.
내가 무심결에 던진 건 작은 눈덩이였는데 그게 예상치 못하게 불어나더니 산사태가 났다. 그렇게 말다툼을 넘어 우리 둘 다 감정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절대 바람 같은 거 필 사람이 아닌 거 안다. 오픈 카톡방에서 만났다고 해도 나보다 더 오래된 현실 친구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 애는 여자친구인 나의 존재를 동네방네 티 내고 자랑하는 스타일이었고 원래부터 오래된 여사친들이 많았으며 그들과 정말 친구로만 지내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곧장 헤어짐을 다짐했다.
첫 만남부터 줄곧 느꼈다. 나와 다른 세상 사람임을. 한마디로 우린 안 맞았다. 다만 그 사실을 마주하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애초에 잘못된 짝임을 알면서도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애썼던 거다.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다. 대화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연인이자 서로의 편임에도 그랬다.
그 따위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약속을 굳이 잡는 이유가 뭔지, 나는 E형 인간들의 심리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뜨겁게 반년을 만나오며 처음 결혼까지 생각했던 상대와 한 순간에 이별을 결심한 이유다. 무수히 쌓인 말의 오해와 상처 이전에, 일단 I는 I끼리 만나는 게 편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MBTI에 진심인 자)
돌이켜보면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인, 요즘 표현으로는 관종에다 인싸 재질인 그를 보며 나 스스로도 지친 것 같다. 황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외로운 연애였다. 나는 서로에게 콕 심겨서 떨어지지 않는 연애를 원했다. 남자친구한테 나 밖에 없었으면 했다.
맞다. 난 좀 삐뚤어졌다. 사람들이 내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게 싫다. 세상에 나 말고 아무도 그를 예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람에게 기댈 구석은 나뿐이었으면 좋겠다. 내 옆이 아니면 살 수 없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는 매번 내게 이해를 바랬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에게도 내 사랑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 애도 날 이해하진 못했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E형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고민이 내 안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져갈수록, 필연적으로 더 깊게 드리워지는 그림자 같은 거다.
MBTI 유형만 봐도 나와 상극의 성격 조합이었으며, 에너지의 방향과 인간관계에 대한 지론이 정치, 종교만큼이나 불가침의 영역임을 깨닫게 해 준 연애였다. 이런 문제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해가 아니라 그냥 양보하는 거다. 아니, 사실상 한쪽이 포기하는 거다. 여사친 문제, 오픈 카톡방 모임, 주말 운동 동호회 등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 신기했다. 우리는 완벽하게 달랐다. 그래서 꼭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완벽한 이원 관계의 궁합일 거라고 믿었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막의 조난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끌렸다. 만나면서 그 애의 사랑방식에 본받고 싶은 것들도 참 많았다. 이렇게도 사랑을 표현하는구나 싶은 충격과 감탄의 순간들조차도, 지금 돌이켜보니 나와 참 안 맞는 사람이라는 시그널이었나 싶다.
남자친구는 가난한 집에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 일을 도와주며 자랐다. 누구보다 맑고 밝고 씩씩한 성격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였던 걸까? 굳이 이 시국에 공연 티켓에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여기저기 날 데리고 다녔으며,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 만족하며 나에게도 아끼지 않고 쉼 없이 마음을 표현했다. 딱히 사치라고 하기도 뭣한데 SNS 광고 등으로 인한 충동적인 소비가 잦았고, 게임과 운동 관련 쓸데없는 장비 욕심도 있었다. (어쨌든 그 운동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에도 날 만나는 지난 반년 동안 나에게 집중해주었다.) 모른 척했지만 만나는 내내 나는 경제관념이 부족하고 안전불감증이 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매력이 넘쳤고 반짝반짝 빛났다. 누가 보더라도 마음이 건강하고 사회성이 매우 발달한 사람이었다. 내가 본 사람 중 우울, 다혈질, 콤플렉스, 열등감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였다.
반면 나는 돈지랄까지는 못해도 가난했던 적은 없었고, 꽃길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잔디길 이상은 걸어왔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갈수록 열등감을 느끼는 쪽은 나였다. 외향적이고 단순하고 쾌활하기만 한 성격의 남자친구와 달리 외골수적인 기질이 충만한 나를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되었으며, 이는 때때로 우울을 낳았고 외면하고 싶은 자기혐오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남자친구와 마지막으로 싸우던 그 날, 그 애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만 나도 멍청했다. 알고 있었다. 생각하면서도, 말을 꺼내면서도 내가 현명치 못한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유도 알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니까, 너무 많이 사랑하니까 그런 거다. 어쩌다 나와 정반대인 사람과 절절한 사랑에 빠져버려 안 그래도 머릿속이 혼란했다. 겪고 싶지 않은 남자친구의 단점, 우리의 갈등, 내가 그 사람의 전부였으면 하는 이기심.
지난달은 남자친구의 생일이었다. 생일 당일엔 하루 종일 축하 카톡과 기프티콘이 쇄도했고 그다음 날은 그의 인스타에 좋아요와 댓글들이 넘쳐났다. 이 모두 여자 성비가 높았다. 괜찮은 체하기 어려웠다. 그 애의 카톡 홈과 인스타에 대놓고 남아있는 전 여친의 흔적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늘 거슬렸지만 끝끝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차라리 아무렇지 않아 질 때까지 혼자 속으로 계속 곱씹었다. 그냥 본인이 잘 나온 사진이었을 뿐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그 애가 원래 부주의한 성격이기도 하고. 또 워낙 과거에 신경 안 쓰는 성격이기도 하고. 정말 아무런 의도나 미련 없이 그냥 놔둔 거라는 거 안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그 애를 흉내 내서 쿨한 척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우린 이미 틀렸던 거다. 썩어 곪아가는 속을 내가 암만 꽁꽁 참고 숨기고 끝까지 쿨한 척, 이해하는 척, 괜찮은 척했어도 우린, 그래도 안됐을 거다.
내 인생 최초로 맛보는 매운맛 이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그동안 수 차례 연애를 하면서 이제껏 단 한 번도 이런 문제로 속 썩은 적 없었던 이유는 나와 비슷한 INXX유형 인간만 만나왔기 때문이란 걸, ESXX 인간을 용케도 잘 피해왔기 때문이란 걸. 나는 두 번 다시 이런 유사한 갈등 상황에 고통받지 않기 위해 가장 사랑했던 그 애와 짧고 굵은 이별의 고통을 선택했으며, 웃긴 얘기지만 앞으로는 성격유형을 염두에 두고 연애 상대를 선택할 생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상식은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마다 상식의 경계치는 너무나 다양하며, 이 나이에 이 시국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그토록 의미를 두는 그는, 나와 다른 상식의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임이 분명했다. 나의 늦은 첫사랑 같은 그를 놓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를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내가 어떤 마음을 줬는지 모른다고 해도 아쉽지 않다. 계속 만났더라도, 좁혀지지 않는 성향의 차이로 우린 도돌이표처럼 계속 싸웠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또 서로에게 하나마나한, 또는 안 하느니만도 못한 말들만 해가며 이해를 바랬을거다. 카톡과 전화번호를 차단한 후 3일 동안 엉엉 울고 나니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한 사람이 그냥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나의 인생에 할당된 눈물의 총량을 지금 다 흘리는구나 싶었다. 남은 감정도 미련도 미움도 증발되고 나니 허무만 남았다.
나의 상처. 나의 흉터. 나의 희망. 나의 구원. 나의 열등감. 나의 늦은 사춘기. 나의 모든 것이었던 너. 고마웠어. 우리 (각자) 잘 살자.
나도 그랬듯이 INTP 인간은 본래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감사한 것은, 6개월 연애의 시간 동안 내가 내심 부러워했던 그 애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며 함께 붙어있다 보니, 애써 흉내 내지 않아도 그 사람의 것이 조금씩 스며들어 자연스레 내 것이 되었다. 지금 나의 사랑은 그를 닮아 전보다 솔직해지고 용감해졌다. 그리고 그에게 배운 사랑의 표현방식을 다음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별 직후 나와 같은 에너지, 같은 성향을 지닌 INTP 남자친구를 만나 짜릿하진 않지만 편안한, 뜨겁진 않지만 따뜻한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가끔 그 애의 아낌없고 남김 없는 사랑의 표현이 그립긴 할 것 같다. 수년이 지나도 여러 인연을 거친 후에도 나에겐 지난 사랑에게서 배운 사랑의 방식이 남아있겠지.
난 그 애가 참 좋았다. 나에게 충격적이었을 만큼 좋았던 모든 사랑의 표현 하나하나가 떠올라서 좋고, 당신이 살면서 나를 알아주었던 게 좋다. 너의 마음속에 내가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서 숨 쉬고 있을거란 게 좋다. 앞으로도 그 애가 생각날 때마다 종종 아플 것이다. 우리가 가까워지고, 함께였고, 다시 멀어진 모든 시간들은 나에게 종종 성장통처럼 불쑥불쑥 쑤셔오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 전에도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 사람에게 연애를 다시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참 독보적인 남자친구 재질이었다. 손톱만큼 보고 싶을 거다. 딱 그만큼이다.
진실로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어떻게' 닮은 혹은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와 '잘 맞는 사람' 조건에 성립하는지, '왜' 애초에타고나길 비슷한 깊이와 밀도를 지닌 사람끼리 만나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인간 유형에 통달한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이게 다 전남친 덕분이다. 나는 지금 사람에게는 사랑만 주고 싶다. 결코 어떤 아픔도 주고 싶지 않다.
벌써 봄이다. 다음엔 갓 연애를 시작한 나의 동류항 'INTP'이자 동종업계 종사자인 現 남자친구 얘기나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