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를 꺼내며

by 탈리

스무살 초반, 학교 쪽문 근처 나의 자취방 201호. 층별 5개 원룸이 4층으로 있던 다세대 빌라였다.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골목 이곳 저곳 누비다 "이 건물에 우리 반 선배가 살고 있어"란 말에 한 곳만 더 보자며 부모님과 들어갔던 방. 주인집 할머니 본인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마침 후끈하게 틀어져 있던 난방에 언 몸이 녹아 홀린 듯 계약했던 곳.


다음 날엔가 동기 한 명도 203호를 계약하기로 했단다. 먼저 살던 선배는 303호. 이 빌라에 아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되다니 외로운 타지 생활에 이 얼마나 큰 의지인지. 우리는 자주 한 방에 모여 집밥을 해 먹거나 별의별 얘기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202호 남자의 괴상한 소음이 닿는 양 옆 벽을 끼고 진짜 미친 것 아니냐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오들오들 떨기도 했다. 아플 때 약이나 죽, 각종 돌봄 서비스를 품앗이한 것은 물론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자기소개서를 쓰며 괴로워하던 어느 늦은 밤에는 노크 소리에 연 문 안으로 샛노란 튤립 송이를 든 팔 하나가 쑥 들어오기도 했다.


따뜻하기만 할 것 같은 역사 가운데 사춘기마냥 쩨쩨하게 굴었던 적도 많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 들려오는 노크에 (나 역시 선배와 동기에게 그런 방문객인 적이 많았을 것임에도) 또는 헤어 드라이기가 고장이 났다며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빌리러 온 친구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던 것 따위의 기억들. 이 말고도 부끄러움에 괴롭지 않고자 뇌가 자발적으로 삭제를 행한 기억이 한 포대는 되겠다.


취직하고 나서야 방을 옮겼으니 근 5년을 살았다. 20대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우리의 빌라. 안락하고도 불편했던 우리의 방. 이삿짐을 다 싣고 사연 있는 주인공인 양 한참을 돌아보며 집에게 인사했다. 밝았던 어림을 간직하고 슬픔은 잊어주기를. 201호를 떠나며 나는 이번 삶의 다음 퀘스트로 이동했다.



이 방이 품었다는 20대의 많은 이야기 중 나는 사실 <모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창을 열었다. 단지 201호의 물리적 배경 묘사로 시작하려던 것이 정신적 배경 묘사로 잘못 길을 든 것이다. 모기 이야기는 이 감성이 아닌데. 정말 아닌데. 본격적으로 촉촉해지려다가 빠지면 끝이 없겠기에 접고 바로 잡아본다.


너희는 다음 글에서 만나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