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인생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스물네 살,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붙었을 때는 그랬다. 고생 끝에 꽃길이라고 믿었고,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첫 유니폼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던 날. 그날의 나는 반짝이고 있었다. 일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첫 직장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이직을 하게 됐다. 그때까진 괜찮았다. “요즘은 다들 이직해. 병원 옮기는 거 흔한 일이야.” 그런 위로가 진심으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두 번째 이직, 세 번째 이직, 그리고 네 번째. 병원은 바뀌었고, 사람들도 바뀌었고, 환경도 바뀌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나면 또 마음이 불편해졌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는 다시 다른 곳을 꿈꿨다. 그렇게 떠난 자리는 점점 마음의 짐이 되어 쌓였다.
동기들은 어느새 5년 차가 되었고, 그 자리에 남아 성실히 쌓아온 커리어를 인정받으며 시니어 간호사가 되었다. 반면 나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머문 경력만 남았다. 이직이 많았다는 사실보다, 그 안에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자꾸 나를 쪼아댔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일까. 남들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길을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버티며 걸어야 하는 걸까. 나에게만 유난히 맞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나만 나를 모르는 건지 헷갈렸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는 참 애매하다. 아직 20대지만 곧 30대라는 압박이 따라온다.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나이로 기대되고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방향을 몰라 헤매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가끔 과거의 사진을 꺼내본다. 그땐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진들이 지금 보면 참 예쁘다. 젊고 생기 있고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던 얼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 시절의 나는 더 단단해 보인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몇 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나를 보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때도 충분히 괜찮았어.”
하지만 현실 속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처럼 행동한다. 지금의 나는 늘 뭔가 부족하고 하나하나가 아쉽고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더 어른스러워야 할 것 같고 뭘 이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SNS 속 누군가는 여유 있고 단단해 보이고,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자기 계발에 열심이다.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경계에만 서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간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살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밀려온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잘못 가고 있는 건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의 정답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걸지도...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스물여덟의 나는 아직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몰라도,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꽤 괜찮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