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딜레마

관계를 읽는 시간을 읽고

by 파야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독일이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에서 비롯된 말로 서로 가까이 붙어 체온을 나누고 싶지만 가시 때문에 가까이 붙지 못하는 고슴도치들이 결국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체온만 나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인간에 빗대어 서로 가시에 찔리지 않는 적당한 거리 유지를 위해 ‘예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혹은 가시가 닿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결과, 결국 온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추운 겨울을 자신의 체온만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도 나오곤 합니다.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볼수록 인간관계의 다양한 어려움을 재미있게 표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가시에 찔리는 것을 감수하고 가까이 붙어서 온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을까요? 아니면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어렴풋이 전해지는 체온으로 만족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가시를 세우고 있는 이런 어리석은 동물들의 사회에는 섞이지 않고 나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느 것이 완벽한 정답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이야기는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합니다. 현실의 고슴도치들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과 같은 딜레마는 겪지 않는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그들은 현명하게도 친밀한 상대에게는 가시를 세우지 않고 부드럽게 눕히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얼마든지 가까이 붙어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관계를 읽는 시간’은 인간관계의 모습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운더리’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운더리는 나와 내가 아닌 타인을 구분하는 경계이면서, 동시에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교류의 통로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바운더리의 두 기능이 자아의 형성부터 다양한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고슴도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떠오른 것은 고슴도치의 딜레마에서 등장하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현실적인 고슴도치입니다. 가시를 세우고 눕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고슴도치 말입니다.

저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바로 이 능력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건강한 바운더리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아를 지키는 단단한 보호의 기능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친밀한 관계를 위해 마음을 열고 교류를 나누는 기능도 합니다. 즉, 건강한 바운더리는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에 따라 이 방어와 개방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고슴도치가 상황에 따라 가시를 세우거나 눕히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고슴도치의 딜레마에서 등장하는 고슴도치처럼 늘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가시를 접고 모두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도 아니라, 때에 따라 그것을 조절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주로 대상으로 삼는 서비스업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직업 중 하나이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서비스업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아닌, 서로 모르는 남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손님’, ‘고객’, ‘접객’ 등의 입장과 예의가 있고, 서로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합니다. 고슴도치로 비유하자면 아직 가시를 세워야 할지 접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은 대상인데, 무리해서 일단 가시를 접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비스업이라고 해서 친절한 모습이 전부는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단호하게 손님을 이끌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위험하거나, 무리한 요구와 마주했을 때는 제지하고 거절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가시를 세워야 할 상황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겪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음이 상하거나,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하는 것 또한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직접 대하지 않는 다른 직업에 비해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친절을 베풀어야 할 부분과 거절해야 할 부분을 구분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일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건강한 바운더리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고슴도치가 가시를 조절하듯이,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서비스를 행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려운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고, 상대에게 필요한 친절도 베풀면서, 더 나아가 서로에게 필요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책을 읽고 노력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관광안내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회사가 보내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