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을 읽고
한국인 중에서 팔만대장경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부터 팔만대장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고, TV나 인터넷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름을 들을 수 있다. 그만큼 팔만대장경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화재이다.
다만, '잘 알려져'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팔만대장경에 대해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직접 설명해보라고 하면 아마 5분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책은 시작하자마자 팔만대장경의 다른 이름을 알려준다. 고려대장경, 재조대장경과 같은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재조대장경은 다시 만들었다는 뜻으로, 그에 앞서 먼저 만든 초조대장경이 존재한다. 고려대장경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대장경, 즉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을 모두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재조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먼저 만든 초조대장경도, 그걸 다시 만든 재조대장경도 ‘베껴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문화재가 남의 것을 베껴 온 것이라니? 하지만 읽다 보니 그 이유는 확실했다. 바로 초조대장경이 중국 송나라에 있던 개보대장경을 그대로 베껴서 새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의 서체가 아름답고 일정하다는 찬사는, 사실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향한 찬사인 것이 맞다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이에 더해 대장경이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중국에도, 거란에도, 몽골에도, 일본에도 각각 그 나라의 대장경이 존재한다고 알려준다. 팔만대장경은 '독창적'이라거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거나 하는 평가에 어울리는 문화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거 참, 막연히 생각해오던 팔만대장경의 가치가 모조리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팔만대장경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책은 불교의 역사에 대해 상당 부분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불교는 우리에게 친숙한 종교이긴 하지만 그 역사에 대해 제대로 파고들면 어려운 내용도 많았고, 그래서 읽다가 지치는 부분도 있었다. 굳이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 왜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내용이 바로 팔만대장경이 가지고 있는 귀중한 가치와 연결되는 부분이었다.
처음에 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담아 가르침을 전하게 되었다. 즉 사람의 기억이 하나의 ‘그릇’되어 부처님의 말씀을 담아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해지는 부처님의 말씀에는 경장, 율장, 논장이 있고 이를 모아 삼장의 결집이라 부른다고 한다. 후세에 중국,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서 만들어지게 된 대장경은 바로 이 삼장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 초조대장경에는 삼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당시 초조대장경을 본 의천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했다. 그래서 삼장을 넘어 ‘백가의 장소’를 담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삼장에 대한 각 종파의 주석서를 가리키고, 당시 나뉘어 있던 여러 종파의 대표 경전이나 문헌을 모두 모아 집대성하겠다는 뜻을 말한다. 이 노력의 결과물이 후에 초조대장경에 더해진 속장경이고, 이는 그대로 재조대장경에 이어진다.
"중국과 거란, 일본으로부터 책을 모으고, 다시 남방으로 다니면서 수색한 수천 권의 책을 모아 학자들을 초청하여 틀리고 빠진 부분을 교정하고 새로 써서 판에 새긴 일." 대장경을 만드는 일은 바로 이런 일을 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팔만대장경의 가치 중 하나로 ‘교정대장경’인 점을 설명한다. 당시 존재하던 수천의 문헌을 모아 서로 비교, 교정해 만든 문헌의 집대성이라는 말이다. 이는 현재에 와서 일본에서 발견된 초조대장경 일부와, 그 외 각국의 대장경과 비교했을 때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고려의 팔만대장경은 불교 문헌의 표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교정이 잘 이루어진 대장경이라고 저자는 설명하였다. 이렇게 교정을 거쳐 고려 팔만대장경에 포함된 문헌 중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재미있는 사례도 몇 가지 있다. 『밀린다 왕의 질문』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한 문헌은 그리스계의 후손인 한 왕과 불교의 비구가 철학적, 종교적 주제를 놓고 대화한 문헌이라고 한다. 또, 『금칠십론』이라는 문헌은 인도 육파철학 수론의 한 학자와 불교의 학자가 토론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렇듯 대장경에는 불교와는 다른 종교나 학문, 심지어 먼 서쪽의 그리스 철학도 포함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했다.
대장경은 이런 것이다. 대장경의 역사가 계속 발전하여 미래에 대장경을 새로 조성해야 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면, 미래의 대장경 안에는 기독교의 신약성서라든지, 이슬람의 코란은 물론이고, 종교 간의 대화나 논전에 대한 기억들이 포함될 것이 틀림없다.
저자는 대장경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다. 책을 읽고 있자니 저자는 대장경을 단순한 불교의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에서부터 시작되어 수많은 세대를 이어간 인류의 기억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적으로 보자면 인도로부터 시작되어 서양과 만나고, 중국의 한자문화권으로 전래되기도 하며, 아시아의 거대한 지역을 아우르며 전해진 역사가 있고, 시간으로 따져 보자면 천 년이 넘는 긴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팔만대장경에 모여 있는 수많은 문헌은 천 년의 세월과 거대한 지리를 넘어선 인류의 발자취 그 자체"라는 저자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팔만대장경은 ‘그릇’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려 시절, 우리의 선조는 온 세계에 퍼져 있는 인류의 기록을 모아 철저한 교정을 거쳐 목판이라는 그릇에 담았다. 그 소중한 기록은 다시 천 년의 세월을 넘어 현대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팔만대장경의 가치이지 않을까.
팔만대장경이 굳이 우리의 것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세계의 인류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새로 포장하여 다시 세계의 인류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표현이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누군가에게 팔만대장경에 대해 소개할 일이 생겼었다면 뭐라고 설명했을까. 외세의 침략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담겨 있고, 8만 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과, 그럼에도 오탈자가 매우 적으며 서체가 일관적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으리라. 그것도 물론 중요한 가치가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난 천 년의 인류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이를 다시 세계의 인류에 전하고자 하는 문화재’라는 설명을 접하자, 지난날 알고 있었던 지식이 아주 얕은 일부에 불과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인류에게 받은 선물을 다시 인류에게 돌려준다." 좋은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지치는 지금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이 있지 않을까. 그런 가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지, 조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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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헌
오윤희(2011).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불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