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배트맨
<<이 글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과 영화 <더 배트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커가면서 이런저런 세상 일들을 경험하다 보면 어렸을 때 들었던 당연한 말들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라는 말이다. 어렸을 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고, 저 말이 지켜지기만 하면 세상은 정의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순진했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사람들은 죄를 심판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죄의 판단에서부터 합당한 벌의 형량까지, 이견과 논란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범죄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억울한 사람이 죄를 뒤집어쓴 경우나 악랄한 범죄자가 죄에 걸맞지 않은 가벼운 형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영악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죄를 지었음에도 벌을 받지 않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불완전한 법을 보면 우리 사회에 정의가 이루어지는 일은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는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었지만 생각보다 우리 세상에서는 통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제대로 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분노하고 답답한 심정을 느낀다. 이런 분노는 그 범죄자를 어떻게든 처벌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법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우리 손으로 해결하지 못한 이 원한을 풀어줄 누군가를 기대하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보면 마치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한 존재가 등장한다. 근육질 괴물이 나타나 지옥에 떨어질 사람을 잔혹하게 처형하는 모습은 분명 누군가에겐 보기 불편한 장면이었겠지만, 벌을 받지 않는 범죄자를 보며 분노했던 사람이 보기에는 통쾌하게 느껴질 장면일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나쁜 사람을 귀신이 잡아가기를, 혹은 신의 벌이 내리기를,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많은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나타나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는 당연한 말을 손쉽게 실행하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의를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속 편한 해결법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드라마 <지옥>에서는 결국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처형이 진짜로 지옥행 처벌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채로 넘어가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정의를 이룰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존재에게 그 해결을 떠넘기는 것은 과연 괜찮은 일일까? <지옥>에서 묘사된 사회는 정의에 가깝다기 보다는 공포정치, 독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개인의 자유는 종교적인 이유로 제한당하고, 사람들은 광신에 빠지거나 공포의 그늘 아래서 참고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물론 <지옥>에서 그리는 사회는 아주 극단적인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깔려있는 메세지는 명확하다. 결국,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을 지켜보고 죄를 판단해 벌을 내린다면 인간이 스스로 만든 규칙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존재의 판단뿐이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한 모든 것, 예를 들어 상호간의 합의, 사회의 규칙, 죄에 따른 합당한 벌과 같은 것은 초월자의 앞에 서는 순간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판단에 따르는 일뿐이다. <지옥>에서는 괴물의 처형을 의미부여해 재단하는 자들이 사회를 어떻게 공포로 물들이는가를 묘사하며 이에 대해 보여 준다.
이런 모습을 신, 염라대왕, 저승사자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 앞에서 평등한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끼리 서로 판단하는 죄와 벌은 불완전하며 흔들리기 쉽다. 그렇기에 초월적인 존재 앞에 서야만 진정으로 평등한 상태에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이 결국 그런 존재일 뿐이라면 이 사회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의 가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떤 지적인 생명체가 서로 간의 죄와 벌을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 더 상위의 존재에 기대야만 한다면 그것을 독립적인 존재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독립적인 존재일까?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로 두 발 딛고 서있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죄와 벌은 스스로가 판단하고, 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렵고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면 때때로 우리가 아직도 어려움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과거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배트맨이다.
최근 배트맨은 <더 배트맨>이라는 새로운 영화로 다시 등장했다. 그가 활동하는 도시 '고담'은 범죄와 부패가 심각한 곳이다. 배트맨 시리즈는 배트맨이 그런 곳에서 범죄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의 힘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슈퍼맨과 같은 히어로가 등장한다면, 인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를 외계에서 날아온 초월적인 존재가 해결해버리는 구도가 되고 만다. 그래서는 아무리 범죄나 부패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인간 스스로에 대한 가치는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배트맨에게는 슈퍼맨과 같은 슈퍼 파워도, 번개를 부르는 신의 힘도, 인간의 힘을 넘어서게 해주는 초능력도 없다. 물론 코믹스나 영화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기만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는 인간이고, 인간을 벗어난 힘은 쓸 수 없다. 그리고 그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통해 인간이 벌이는 온갖 범죄에 대항하여 동분서주한다. 그런 배트맨이기에 인간의 힘으로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캐릭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더 배트맨>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숙한 배트맨은 범죄자들에게 무자비한 분노를 쏟아내며 사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복수와 분노만으로는 정의에 이를 수 없다고 깨닫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히어로로 거듭난다. 배트맨이 그렇게 희망을 내걸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건 우리가 스스로의 힘을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직은 범죄와 부패가 들끓고, 불완전한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에는 초월적인 존재가 끼어들 자리 같은 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진정한 정의를 우리가 이뤄낼 날이 올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보이는 부조리한 모습에 실망한 적이 하루 이틀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힘으로 이뤄낼 수 있으리라고 믿어 본다.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당신이 간섭할 일은 없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 좋으리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거듭난 배트맨을 보며 나 또한 그런 희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