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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29. 2023

운명의 비

         

산은 높았다.  오르고 싶지만 오르지 못하는 산은 왜 거기 있는 것일까. 산이 오라 부른다.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산은 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산을 바라보았다. 오직 바라만 봐야 하는 그 운명의 무게를 산은 알지 못한다. 네가 주인이 아니고 나도 주인이 아니다. 주인이 아니기에 자유로울 것 같아도 자유롭지 못하다. 길이 보였다. 산으로 향하는 길이 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나서지 않았다. 그 길을 갈 자신도, 그 길이 의미하는 바도 없음을 알았다. 빗물이 얼굴을 적셨다. 머리 위에서 흘러내렸다. 온몸이 다 젖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비를 다 맞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비가 그렇게 내렸다. 이제 운명을 타고 떠난다. 산을 등진 채,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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