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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ul 10. 2023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현실은 나에게 언제나 힘들고 아픔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 없고 나의 존재감 하나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희망도 사라지고 암울하기만 한데 내가 현실에 더 이상 발붙여 살아갈 이유가 없다. 


  이제 현실을 떠나련다. 이 적막한 현실의 땅을 떠나 마음만이라도 편히 지낼 수 있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련다. 욕심 없이 씨를 뿌리고 밭을 갈면서 거기서 나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려한다. 


  누구도 오지 않는 조용한 그곳에서 그저 그냥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의미 있는 것도 없는 곳을 떠나 들풀처럼 나무처럼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나의 나머지 삶을 그냥 보내리라.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나를 내려놓고 모든 욕심을 놓아버리고 나의 존재는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조용히 소리 없이 살다 가련다.


  이 세상에 없었던 존재였으니 잠시 왔다가 다시 원래의 없었던 곳으로 가야 할 운명, 그 모든 것을 다 잊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그냥 자연에서 조용히 살아 이곳을 떠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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