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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Nov 23. 2023

아버지의 기저귀


아이 셋을 키우느라 기저귀를 무던히도 많이 갈았던 기억이 있다. 큰아이와 둘째는 24개월 터울, 기억은 희미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도 6개월 정도 지나서야 큰애가 기저귀를 뗀 것 같다. 둘째와 막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아이당 하루에 5~6번 정도 기저귀를 갈아준 것 같다. 배앓이를 했던 날은 10번 가까이 기저귀를 갈았던 적도 있었다. 한 아이가 약 30개월 정도 기저귀를 한 셈이니 900일 동안 대강 5000번 정도, 세 아이 합치면 약 15,000번 기저귀를 간 셈이다.


난 아이들이 좋아 기저귀 갈아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 3분의 1 정도는 내가 기저귀를 갈아주었으니 최소한 5,000번은 기저귀를 갈았을 것이다. 막내가 기저귀를 떼고 났을 때 더 이상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다시 아이 2명이 더 생겼다. 큰 아이는 아버지, 작은 아이는 어머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엄마하고 나, 누나 정도만 알아볼 뿐 다른 사람은 인지하지 못한다. 두 달 전만 해도 걸음을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걷는 것은 불구하고 서 있는 것도 못하신다. 척추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하반신을 전혀 못 쓰신다. 아버지 기저귀를 갈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오래전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았던 것처럼 이제는 아버지 기저귀 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린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내가 아버지를 들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벼워 번쩍 안아 씻기고 목욕이 끝나면 다시 번쩍 안아 욕조에서 나올 수 있어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아버지를 욕조에 넣어 씻겨드리는 것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며칠 전에도 욕조에 물을 가득 담은 후 아버지를 씻겨드렸다. 샴푸로 머리를 두 번 감겨드리고 몸 구석구석을 부드러운 타월로 비누칠을 해 닦아드렸다. 목욕을 끝내고 물기를 닦은 후 기저귀를 하고 옷을 입혀드렸다. 의사가 가르쳐 준 대로 주사를 준비해 배꼽 밑 지방이 많은 부위에 알코올을 바른 후 주사를 놓아드렸다. 주사가 아프지도 않은 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 목욕하고 나니 개운하지. 이제 푹 주무셔요."

아버지는 대답대신 눈만 깜박이셨다. 아버지 두 손을 이불속에 넣은 후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겨 덮어드렸다.


방문 옆에 있는 조그만 보조등을 켠 후 형광등을 끄고 문을 닫고 나왔다. 그래도 밤에 잠은 잘 주무신다.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식사하시는 시간만 빼면 거의 주무신다. 마치 금방 태어난 아기처럼 하루종일 주무신다.



<세월이 무거웠지만>



유리창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옵니다

발끝이 시려 양말을 신었습니다

계절이 더디 가기를 바랐건만

너무도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월의 무게가 이다지도 클 줄 몰랐습니다

다가오는 계절이 두렵기만 합니다

또 어떤 것을 잃을지 무섭기조차 합니다

나에게 온 모든 것들이 떠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내면의 담담함에 나 자신 놀라면서도

잡고 있는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가오는 겨울이 지나면 다시 꽃이 피겠지만

예전의 봄은 아닐 것입니다

나에겐 이제 생의 치열함도

의미와 가치를 찾는 열정도

무언가를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그저 오늘 존재함으로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 말 없이 오늘을 지내고

있는 듯 없는 듯한 내일을 살아갈 뿐입니다

의지의 날들이 그동안을 지탱했지만

이제는 그 의지에도 자유를 주렵니다

별을 바라본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이유도 무상함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있었으니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사랑했기에 헤어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얼마 전 아버지 영정사진을 옷장 안 나만 아는 곳에 잘 간직해 놓았다. 그 위로 장례식에 입을 검은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걸어놓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버지 장례식을 치러야 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날 많이 울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승에서 아버지는 힘들고 어렵게 사셨지만 아무것도 없을 저승이 더 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날까지 아버지의 기저귀를 열심히 갈아드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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