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선택하지도 말고 그냥 다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스스로 다 헤쳐나간다. 두려워 피하거나 겁내서 도망치지 않는다. 겪을 건 다 겪고, 감내할 건 다 감내하고, 체념할 건 다 체념한다. 삶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 우리는 삶의 전율을 느낀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는 니나라는 여인의 삶을 그녀를 사랑했던 슈타인의 편지와 일기로 조명한 소설이다. 니나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녀의 삶 전체를 받아들이고 그녀 삶의 흐름을 스스로 바꾸려 노력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치는 삶의 모든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모든 장애물과 아픔을 전부 받아들였다. 니나는 그녀가 겪는 많은 아픔과 고통은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그것을 뛰어넘으려 했고, 그러다 넘어지기도 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 고통을 벗어날 수가 없지만 그것을 넘어서다 보면 기쁨도 있고, 행복도 있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슈타인은 니나를 사랑했지만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며 그 사랑을 지켰다. 니나에게 20년 연상인 그는 그 오랜 세월 니나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하며 그의 생의 모든 것을 건다. 그는 니나의 방종을 인내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의 자살을 막아주었다.
죽음을 앞둔 슈타인이 18년간 지켜보았던 니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슈타인은 그의 죽음 앞에서 니나를 회고하며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마감한다.
“나는 인생한테, 나에게 그런 아름다운 해후를 마련해준 데 대해서 감사한다. 니나의 목소리는 내가 들은 마지막 인간의 것이 되어야 했고 니나의 눈은 내가 기억해둘 마지막 눈이 돼야 했다. 아침에, 다시 한번 나의 양심은 나의 인생을 회고해 보기를 강요했다. 그리고 나는 많은 빛이 있었던 것을 발견한다. 인생의 빛, 이제 너는 변경할 수 없는 그런 순간에 그런 것을 통찰한 고통은 크다. 나는 니나한테 마지막 편지를 쓴다. 어스름이 닥치고 나를 위한 시간이 다가온다. 고통이 시작되고 나의 의식은 장막에 싸이기 시작한다.”
니나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지켰던 그는 죽어가며 삶이 무엇인지 느꼈으리라. 슈타인은 니나로 인해 그의 존재의 의의를 느끼며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정말 행복한 삶의 종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가야 한다. 삶의 근원적인 의미는 흔들리지 않음이다. 거기에 우리의 존재 가치가 있다. 외부의 폭풍에 흔들리면 우리의 존재도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만든 굴레도 있고, 외부에 의해 타의로 주어지는 굴레도 있다. 이러한 굴레를 단순히 벗어나려고 하다가 오히려 절망과 좌절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한가운데서 굳건히 서서 그냥 다 부딪치고, 헤쳐나가고 잠시 쉬더라도 다시 전진해 가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삶의 전율을 느낀다. 그 전율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살아온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은 도피가 아니다. 삶을 마주 보며 어떤 일이건 헤쳐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