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어제의 나보다는 오늘의 내가 더 나아져야 하고,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내가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터인데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그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야생에 살고 있는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중국 송나라 때 곽암이 열 단계로 그린 그림을 심우도라고 한다.
1. 심우(尋牛)
忙忙撥草去追尋
水濶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晩蟬吟
바쁘게 풀밭을 헤치며 쫓아 찾아가니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 또한 깊구나.
힘이 다하고 정신이 피곤함에 찾을 곳이 없는데
다만 단풍나무에 때늦은 매미소리 들리네.
심우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마음을 일으키는 단계이다. 소를 찾기 위하여 산속을 헤매듯이 우리도 자신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단계이다.
2. 견적(見跡)
水邊林下跡偏多
芳草離披見也麽
縱是深山更深處
遼天鼻孔怎藏他
물가 수풀 아래 발자국이 널려 있고
아름다운 풀꽃이 활짝 피었으니 그 무엇을 보겠는가.
비록 깊은 산 또 더 깊은 곳에 있다한들
하늘을 휘젓는 콧구멍은 어찌 숨길 수 있는가.
견적이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단계이다. 소의 발자국을 볼 수 있는지 볼 수 없는지는 오직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을 다하면 본성의 모습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3. 견우(見牛)
黃鸝枝上一聲聲
日暖風和岸柳靑
只此更無回避處
森森頭角畵難成
가지 위의 꾀꼬리는 한결같이 지저귀는데
날은 따뜻하고 바람은 온화하며 언덕 위 버들은 푸르구나.
다만 이곳에서 다시 돌아가 피할 곳이 없으니
우뚝 솟은 뿔의 진면목을 묘사하기 어렵구나.
견우란 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소를 발견하는 단계이다. 견성이 눈앞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4. 득우(得牛)
竭盡神通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纔到高原上
又入烟雲深處居
신통을 다하여 저것을 얻었으니
마음과 힘은 강건하나 끝내 다스리기 어렵구나.
때로 가까스로 높은 언덕 위에 오르고
또 안개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기도 한다네.
득우란 마음속에 있는 소를 보긴 했으나 단단히 붙들어야 하는 단계이다. 소는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소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소이기에 검은색이다. 점점 나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감에 따라 소는 흰색으로 변하게 된다.
5. 목우(牧牛)
鞭索時時不離身
恐伊縱步入埃塵
相將牧得純和也
羈鎖無抑自逐人
소 몸에 고삐를 항상 매어두는 것은
걸음을 함부로 해서 속세에 들어갈까 저어해서라네.
도와서 순하고 온화하게 길들이려면
굴레로 억제하지 않고 스스로 사람을 잘 따르게 하려네.
목우란 소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소의 코에 코뚜레를 하는 단계이다. 소가 유순하게 길들여지기 전에 달아나버리면 다시는 찾기 어렵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騎牛迤邐欲還家
羌笛聲聲送晩霞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脣牙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피리소리 저녁노을에 퍼진다.
한 박자 한 노래에 무한한 뜻 담겨 있으니
노래의 뜻을 아는 이 있다면 굳이 설명하리오.
기우귀가란 잘 길들여진 소를 타고 마음의 본향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번뇌와 탐욕, 망상이 사라진다. 소는 무심하고 그 소를 타고 가는 나도 무심하다. 마음이 없는 상태이다. 이제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 변하였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騎牛已得到家山
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
鞭繩空頓草堂間
소를 타고 집에 이르니
소의 마음 비었고 사람 또한 한가롭다.
붉은 해는 정오인데 오히려 꿈을 꾸고
고삐만 부질없이 초당에 버려져 있네.
망우존인이란 집에 와보니 소는 간데 없고 나만 남아 있는 단계이다. 소란 나의 심원에 도달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으니 그것을 잊어야 함이다. 자신이 깨달았다는 자만감을 버리는 경지이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鞭索人牛盡屬空
碧天寥廓信難通
紅爐焰上爭容雪
到此方能合祖宗
고삐와 사람과 소 모두 공으로 돌아갔으니
푸른 하늘은 텅 비고 넓어서 참으로 통하기 어렵구나.
화로의 불꽃 위에 다투어 눈을 받아들이듯이
이 경지에 이르면 바야흐로 조종과 합치된다네.
인우구망이란 소가 사라진 뒤에는 자기 자신도 잊어야 하는 단계이다. 깨우침도 깨우쳤다는 법도 깨우쳤다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공(空)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완전한 깨달음의 단계이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返本還源已費功
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
水自茫茫花自紅
본원으로 돌아감에 있어 정력을 너무 허비했으니
어찌 눈먼 봉사나 귀머거리처럼 하느냐.
집안에서 집 앞의 것을 보지 못하나
물은 스스로 아득히 흘러가고 꽃은 절로 붉도다.
반본환원이란 텅 빈 원상 속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이는 단계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모든 것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로소 보이게 된다. 나의 생각과 편견, 그리고 선입견이 사라진다. 참된 지혜를 가지게 되는 자아를 발견한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露胸跣足入廛來
抹土塗灰笑滿腮
不用神仙眞秘訣
直敎枯木放花開
가슴을 드러내고 맨발로 가게에 돌아와
흙과 회를 바르니 뺨에 웃음이 가득하구나.
신선의 비결을 쓰지 않고도
곧 마른 나무로 하여금 꽃이 피게 하는구나.
입전수수란 이제는 거리로 나아가 중생을 위하는 경지이다. 싯다르타가 깨달은 후 세상으로 나간 것과 같다. 중생을 위한 베풂과 덕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게 된다.
삶은 유한하다. 삶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나은 나 자신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얻으려 하다 잃게 되고 취하려 하다 놓치는 그러한 일들을 우리는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소중한 우리의 삶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오늘도 헛된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