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경험하게 된다.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 친척, 직장이나 사회 동료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다.
이세기의 소설 <이별의 방식>은 아빠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딸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아빠는 홀로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딸을 16살까지 키운다. 출장 관계로 미국에 간 아빠는 그곳에서 백인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여인은 미국 장군 출신의 딸이었다. 외로웠던 아빠는 그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고 미국 장군 집안의 위력은 대단해서 돈과 명예, 사회적 지위를 한꺼번에 얻게 된다. 한국에 있는 딸을 미국에 초청하지만, 딸은 친구들이 있는 한국을 떠나 낯선 땅인 미국에 가기를 거부한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따로 떨어져 살게 된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하여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후, 아빠의 초청에 의해 미국을 방문한다. 빨간 머리의 백인 여인과 살면서 아들 하나도 낳아 기르는 아빠, 오랜 세월 만나지 못한 사이 훌쩍 성인이 되어 성장해 버린 딸, 그들의 10년은 진정한 이별을 하기 위한 시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왕 떠나는 마당에 서로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는 어차피 서울에서 살 사람이고 그들은 이곳에 살 사람이다. 내가 오지 않았던 셈 치고 조용히 떠나 주자. 사실 그들에겐 그들의 세상이 있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다.”
한국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딸과 미국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아빠는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각자의 길이 너무 달라 이제 더 이상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직감을 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어떤 끈으로 굳이 구성하고 연결할 건 뭔가. 더구나 그와 나 사이에 흐린 십 년이란 시간은 우리 사이를 완벽하게 갈라놓고 있다. 시간이 오랠수록 사람 사이는 변질되게 마련이 아닌가. 너와 내가 남이 돼버린 과정, 그것도 너무나 미묘한 나머지 그 사유들을 낱낱이 늘어놓을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의 자신의 생각대로 자기의 이익을 따라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선택을 한다. 그들은 그렇게 남이 되어 갔다.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스롱 피아비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중학교 1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집안의 감자 농사짓는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녀가 20세 되던 해 한국에 사는 남자와 국제결혼을 한다. 남편은 청주에서 조그만 복사 집을 하는 분이었는데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았다. 한국에 온 피아비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도 못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집안에만 있는 아내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남편은 그녀를 집 근처 당구장에 같이 가자고 하고, 피아비는 남편을 따라 평생 처음으로 당구장이라는 곳을 간다. 그녀의 남편은 취미로 당구를 좋아했다. 당구장에 도착해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당구를 같이 치자고 하고 피아비도 남편이 가르쳐주는 대로 당구를 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당구장이라는 곳을 가보지 못했고, 처음으로 잡아 본 당구 큐였다.
피아비가 당구 치는 모습을 본 남편은 그녀가 당구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태어나 큐대를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었지만, 피아비의 숨어있던 당구의 잠재력은 드디어 활화산처럼 폭발하게 된다. 재미로 치기 시작한 당구 실력이 늘게 되면서 각종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기 시작한다. 전생에 당구의 여신이었던 피아비가 이생에서 다시 환생을 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던 피아비였기에 남편은 그녀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한다. 평생 하던 복사집을 청산하고 피아비를 위해 당구장을 개업한다. 하루 종일 아내가 당구를 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그들이었기에 청주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인 청주 문암 생태 공원 옆에 당구장을 차리고, 남편과 피아비는 같이 당구장을 운영한다. 손님이 오면 뒷바라지를 하고, 손님이 없을 때는 둘이 같이 당구를 치면서 피아비의 실력은 더 늘기 시작한다.
피아비의 당구 실력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숨어있던 당구의 고수들이 피아비의 당구장으로 오기 시작한다. 재야의 고수들과 당구를 함께 치면서 피아비의 당구 실력이 엄청나게 늘게 되면서 피아비는 대회의 모든 상을 휩쓸면서 세계 아마추어 여자 당구계를 평정한다. 스포츠 국제 대회에서 우승이 거의 없었던 캄보디아에서 피아비는 국보급 스포츠 영웅이 되고, 캄보디아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우리나라의 김연아 선수 정도의 위상이 된다.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더 이상의 적수가 없어 피아비는 드디어 프로 세계로 입문한다. 숲 속의 호랑이가 드디어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프로 입문 후 2번째 대회였던 어제 6월 20일, 그녀는 마침내 프로 세계에서마저 우승을 차지한다. 현재 그녀는 한국 여자 당구 랭킹 1위, 세계 여자 당구 랭킹 3위이다.
만남과 이별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명 안에는 분명히 우리의 선택이 존재한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른 방향의 이별을 선택할 수도 있고, 상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같은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별과 어떤 만남이란 단지 단어 하나 차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