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기억으로 남는다

by 지나온 시간들

파트릭 모디아노는 2차 대전이 끝나는 1945년에 태어나 열여덟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33세에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상을 수상하였고 2014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어느 남성이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 그는 과연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트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20세기 초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은 그것을 겪은 모든 사람에게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었는지 모른다. 차라리 없어도 좋을 시간이었다. 무엇을 위해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지는 것일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절엔 인간의 자아마저 의미가 사라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뻗고 누워서 천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벽지의 무늬를 바라보았다. 나는 거의 벽에 얼굴을 붙이다시피 하고서 그 세세한 부분들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시골 풍경, 복잡한 가발을 쓰고 그네를 타고 있는 처녀들, 헐렁한 바지를 입고 만돌린을 켜고 있는 목동들, 달빛에 비친 큰 숲,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 추억도 일깨워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그림들은 내가 그 침대에서 잠잘 때 나에게 익숙한 것이었을 텐데, 나는 천장에서, 벽에서, 문 쪽에서,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떤 흔적, 어떤 표적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내 눈에 짚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인공은 왜 기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기억을 찾기 위해 헤매는 동안 그가 발견하는 과거는 암울함도 있었지만 아름다움도 있었다. 삶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어느 일방적인 하나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잊고 싶은 것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과거가 잊고 싶은 것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 건물의 입구에서는 아직도 옛날에 습관적으로 그곳을 드나들다가 그 후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 같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약해져 가는 어떤 파동,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이.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나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그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한다. 어느 시대가 암울했다면 그 소멸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그 과거를 찾는 것이다. 잃어버린 내 삶을 가만히 두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로 이생을 마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 기억이 어떠냐에 따라 그 존재의 가치가 달라진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남겨야 할까? 남아있는 시간만이라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그러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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