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우크라이나 스타니슬라브에서 1948년 태어났다. 벨라루스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사고 등에 대한 목격자들의 인터뷰를 모으고 기술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에 대한 기록을 20년 넘게 집필하여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6년 4월 26일 밤,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공간으로 이동했다. 새로운 현실로 건너왔고, 그 현실은 우리의 지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념보다도 더 거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의 고리가 끊어졌다. 순식간에 모든 과거가 힘을 잃어, 과거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고, 어디에나 있는, 혹은 그렇다고 믿은 인류 기록보관소의 문을 여는 열쇠가 사라졌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보고 겪은 것을 설명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사고 결과, 5천만 퀴리의 방사성 핵종이 방출됐고, 그중 70퍼센트가 벨라루스에 도달했다. 국토의 23퍼센트가 1제곱킬로미터당 1 퀴리 이상의 세슘-137로 오염됐다. 180만 헥타르가 넘는 경작지가 1제곱킬로미터당 1 퀴리 또는 그 이상으로 오염됐고, 1제곱킬로미터당 0.3 퀴리 이상의 스트론튬 90으로 오염된 땅은 50만 헥타르에 달한다. 26만 4천 헥타르의 농지가 쓸 수 없게 되었다. 산림의 26퍼센트와 강가에 있는 저습지 초원의 반 이상이 방사선 오염 지대로 분류된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단순히 사람이 죽고 다치는 그러한 사건이 아니다. 생명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땅마저 죽이는 재앙이었다. 어떤 생명체도 그 땅을 토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악몽 같은 재난이었다. 인간에 의해 비롯된 종말론적 사건인 것이다.
“죽음이 주위 모든 것을 덮쳤는데, 뭔가 다른 죽음이었다.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당한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해 존재하는 자연적 도구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생물 종처럼 무방비 상태였다. 하지만 어차피 방사선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냄새도 없기에, 눈, 귀, 손가락도 더는 쓸모없어졌다. 방사선은 형체가 없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땅에서 뽑힌 풀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 낚아 올린 물고기가, 사냥한 들새가, 사과가….”
방사능은 보이지도 않은 채 우리의 몸에 쌓이게 된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우리 몸에 그것이 스며드는 것인지 알 수조차 없다. 심지어 공기 중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죽음을 호흡하고, 죽음을 마시고, 죽음을 먹는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가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살아 있는 목소리. 사진 속 모습보다도 더 진짜 같은 목소리. 하지만, 절대로 그가 먼저 나를 부르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내가 그를 부른다. 아무도 나를 그에게서 떼어낼 수 없었다. 정장을 입히고 모자를 가슴 위에 올려놨다. 발이 부어 신발을 신길 수 없었다. 발이 아니라 폭탄이었다. 그의 팔을 들어 올리면 뼈가 흔들리고 움직였다. 피부조직이 떨어져 나갔다. 폐와 간의 조각이 목구멍으로 타고 올라와 숨을 못 쉬었다. 손에 붕대를 감아 입속에 있는 것을 다 긁어냈다.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맨발인 채로 그를 묻었다.”
인류에게 있어서 공포와 악몽은 단지 악에 기초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진보를 위한 기술 또한 우리에게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뛰어난 기술일수록 이에 따른 재앙은 더 무시무시해질 수 있다.
체르노빌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죽음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메아리가 되어 지구 어디에서나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