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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왜 잔인할까?

by 지나온 시간들

T. S. 엘리엇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하버드, 소르본,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황무지라는 유명한 시를 썼고,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황무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나무뿌리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여름은 소낙비를 몰고 슈타른베르가제를 건너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복도에 머물렀다가

해가 나자 공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 가량 대화했다.

내가 러시아 사람이라고요.

천만에 나는 리투아니아 출신이지만 순수한 독일인이에요.

어렸을 때, 친척 형네에 살고 있었는데

형은 나를 썰매에 태워 데리고 나간 일이 있었죠.

난 무서웠어요.

“마리, 마리, 꼭 붙들어”

라고 그는 말했어요.

그리고 미끄러져 내려갔지요.

산에서는 마음이 편하지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에는 남쪽으로 갑니다.


이 엉겨 붙은 뿌리들은 무엇인가?

돌더미 쓰레기 속에서

무슨 가지가 자란단 말인가?

인간의 아들이여

너희들은 말할 수 없고

추측할 수도 없어

다만 깨진 영상의 무더기만을 아느니라

거기에 태양이 내리쬐고

죽은 나무 밑엔 그늘이 없고

귀뚜라미의 위안도 없고

메마른 돌 틈엔 물소리 하나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밑에만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 밑으로 들어오라

그러면 네 너에게 보여 주마


아침에 네 뒤를 성큼성큼 따르던 너의 그림자도 아니고

저녁때에 네 앞에 솟아서 너를 맞이하는

그 그림자와도 다른 것을

한 줌 흙 속의 공포(恐怖)를 보여 주마.

바람은 가볍게

고국으로 부는데

아일랜드의 우리 님

그대 어디서 머뭇거리느뇨

"일 년 전 당신은 나에게 히아신스를 주셨지.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히아신스 소녀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신이 꽃을 한 아름 안고 이슬에 젖은 머리로

밤늦게 히아신스 정원에서 나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이 안 나왔고 눈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몰랐었다.

다만 빛의 한 복판

그 정적을 들여다보았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바다는 황량하고 님은 없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의 정신적 상황은 황무지 그 자체였다. 거의 모든 것이 죽어 있는 상태였다. 돌무더기가 쌓여 있고 황폐화되어 있는 땅 위에 봄인 4월이 왔다. 어쨌든 새싹이 나고 생명이 다시 탄생해야 할 계절이다.


겨울 내내 모든 것이 죽은 듯이 잠자고 있었던 황무지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려 한다. 황무지로 되어 버린 대지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 뿐이다. 차라리 그냥 겨울이 계속되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편할 텐데, 새로 무엇을 하려고 하니까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야 하니 잔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삶에는 고통이나 노력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잔인한 4월이 끝나면 희망찬 5월이 다가온다. 황무지였던 그 땅이 생명으로 다시 부활한 아름다운 곳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잔인한 4월이지만 이를 이겨낸다면 더 좋은 시절이 곧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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