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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Dec 18. 2021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왜 중요할까?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그리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꼽는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사람들의 인식체계를 흔들어 놓으면서 중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근대 사회로 접어들게 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뉴턴 이후 약 250년 정도는 중세 시대와는 다른 패러다임 체계로 변환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절대주의 세계관이다. 1900년대 이르러 또 다른 혁명가 아인슈타인이 나오면서 이 절대주의 세계관은 상대주의로 전환되었지만, 뉴턴에서 비롯된 이 절대주의 사고방식은 인류 발전에 있어 엄청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뉴턴이 책을 몇 권 쓰기는 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린키피아>이다. 어릴 적 유클리드를 좋아해 그의 책 <기하학 원론>을 수시로 읽었던 뉴턴은 자신의 책인 프린키피아도 유클리드의 방식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프린시피아는 읽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이다. 내 주위에서 프린시피아를 읽었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심지어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물다.


   영국은 근대 이전에는 주위의 국가들로부터 수많은 외침을 당했고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치러내야 했다. 과장이 될지는 모르나 프린키피아가 나오고 나서 영국의 과학 발전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기 시작한다. 뉴턴 이후 영국은 과학에 있어서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국가 중에 가장 앞서가는 나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이는 산업 혁명으로 이어지며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바로 대영제국의 탄생이다. 그리고 대영제국의 강력한 통치력은 예전의 로마제국을 넘어서며 전 세계를 상대로 200년 동안 유지되었다.


  근대 이전의 인류는 소위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2,000년 정도를 지배했지만, 사실과 다른 것들이 너무 많아 과학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했다. 단지 그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프톨레미우스의 <알마게스트>가 천문학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오로지 자신의 주관에 입각한 주장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미우스의 권위는 동양의 공자나 맹자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이것이 틀린 것이라 감히 생각조차 하고 있지 못했다. 이러한 헛된 권위에 의해 옳지 않은 자연적 원리나 사실들이 그렇게 2,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혁명은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신부였던 코페르니쿠스, 뒤를 이어 피사 대학의 갈릴레오, 그리고 케플러에 이르러 자연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2,000년 동안 지배했던 인류의 암울했던 시기는 물러갈 준비를 해야 했다.


  뉴턴은 시대를 잘 타고났다. 코페르니쿠스부터 뉴턴이 학문에 뜻을 두기까지 약 150년이 흘러갔고 서서히 중세 시대의 사고방식은 균열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그만 균열은 붕괴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서 그 임계점을 넘어서게 할 수 있는 모멘텀이 절대적으로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태어난 사람이 바로 아이작 뉴턴이었던 것이다. 뉴턴은 평생 어떤 여자도 사귀지 않고 독신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만 몰두했다. 그가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예화는 너무나 많다. 한 가지만 소개한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집에는 집안일을 돌보아 주는 집사가 있었다. 뉴턴은 식사도 자신이 연구하던 방에 있는 테이블에서 항상 먹었기에 집사는 뉴턴이 먹을 식사를 항상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점심을 먹으라고 뉴턴의 방으로 놓고 나갔다가 다시 저녁이 되어 준비해서 뉴턴의 방으로 들어갔던 집사는 점심때 가져다주었던 식사를 뉴턴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 집사가 뉴턴에게 식사를 왜 안 하셨냐고 물었더니 뉴턴은 그냥 멍하게 자신이 식사를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 그때가 점심시간인지 저녁 시간인지도 몰랐다고 할 정도로 집중했다고 한다.


  사실 프린키피아는 뉴턴이 대학과 대학원 시절 이미 끝내 놓은 것이었지만 출판은 20년이 지나 1687년에 출간된다. 이렇게 출간이 늦어진 이유는 뉴턴은 지극히 내성적 성격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논쟁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를 꺼렸으며, 그의 연구 결과를 그냥 자기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고 심심하면 꺼내 보낸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턴의 친구였던 핼리가 뉴턴의 결과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니 속히 책으로 만들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뒤늦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프린시피아에는 어떠한 내용이 들어 있을까? 여기서는 그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프린시피아의 중요 내용과 뉴턴이 이 책을 어떻게 서술했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뉴턴이 평생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바로 “운동”이다. 뉴턴은 왜 그렇게 운동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나 우주 공간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거의 대부분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물체는 거의 없다. 심지어 책상 같은 고체 물질 내부에서도 원자는 어떤 위치에서 조금씩 진동을 하거나 아주 작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이동을 하고 있다. 뉴턴은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운동을 한다면 이러한 운동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순서라고 생각했다. 과학 특히 물리란 자연의 이치를 알아내는 학문인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운동하고 있다면 이러한 운동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운동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위치에 있지 않고 위치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치 이동을 위해서는 그 원인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뉴턴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운동의 원인이었다. 운동은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물체의 공통점이기에 그 원인 또한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운동하고 있는 모든 물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성질은 무엇일까? 바로 질량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물체 중에 질량이 없는 물체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던 뉴턴은 이를 바탕으로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가 바로 만유인력의 법칙이며 이것이 우주 공간에서 모든 물체가 운동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란 것을 밝혀냈던 것이다. 물론 먼 훗날 빛의 입자인 광자는 질량이 없음이 밝혀졌고 이를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게 되며 상대론은 뉴턴 물리학을 대체하게 된다.


  그렇다면 질량을 가지고 있는 우주 공간의 모든 물체는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물체의 가장 중요한 본성은 물체가 어느 위치에 정지하고 있으면 그 위치에서 계속 정지하고 있으려 하고, 운동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운동을 하려고 하는 성질이다. 이것이 바로 관성으로 뉴턴의 운동 제1 법칙이 관성의 법칙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성의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고 그 물체의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그 힘을 받은 물체는 운동의 원인이 되는 힘으로 인해 자신의 고유 성질인 관성이 깨져 버리게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그 물체는 운동의 변화를 가지게 되니 이것이 바로 가속도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법칙이 뉴턴의 제2 법칙인 F=ma이다. 이 방정식으로 지구 상이나 우주 공간의 웬만한 물체의 운동은 다 풀 수 있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게 가장 중요한 방정식의 탄생이었다.


  근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인 절대주의 세계관이 바로 여기서 근거한다. F는 원인이 되며 a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운동의 원인을 알며 그 결과인 운동의 변화를 절대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 인류의 근대 사회를 지배하게 된 인과론에 근거한 절대주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뉴턴은 또한 이러한 운동을 연구하면서 미적분학이라는 새로운 수학의 영역도 스스로 개척한다. 왜냐하면 그가 연구하고자 하는 물리학에는 당시 이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수학이 없었기에 그가 스스로 미적분이라는 새로운 수학 체계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뉴턴은 자신이 프린키피아를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의 형식을 따라 쓰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그리고 프린키피아가 물리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하학 원론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프린키피아의 운동법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의 장(Chapter)의 제목은 바로 “공리, 운동법칙”이라고 하고 그 밑으로 “운동 법칙 1 : 물체에다 힘을 가해서 그 상태를 바꾸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가만히 있든, 일정한 속력으로 직선 운동을 하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한다.”라고 서술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다. 이러한 기본 법칙이 끝나면 다시 “딸림 법칙 1 : 어떤 물체에 두 힘이 동시에 작용하면, 그 물체는 같은 시간 동안 평행사변형의 대각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그 평행 사변형의 두 변은, 두 힘이 따로 작용했을 때 그 물체가 같은 시간 동안 지났을 길이다.”라는 표현들이 나온다.


  이러한 형식은 바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과 완전히 똑같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의 평면 기하학 편에 보면 “법칙 14: 어떤 직선의 한 점에서 두 직선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었는데, 그들이 만드는 두 개의 이웃한 각을 더한 것이 직각을 두 개 더한 것과 크기가 같다고 하자. 그러면 두 직선은 한 직선에 놓인다.”라는 기본 법칙이 있고 이 뒤를 이어 “딸림 법칙 : 두 직선이 만날 때, 그들이 만드는 네 각을 더한 것은 네 개의 직각을 더한 것과 크기가 같다.”가 나온다. 이런 형태로 서술된 것이 바로 기하학 원론이다.


  그렇다면 뉴턴은 단지 유클리드를 자신이 좋아하고 학교 시절 기하학 원론을 본인이 자세히 공부했기에 그 형식을 그렇게 그대로 따라서 한 것일까? 물론 일부 그런 면도 있을지 모르나 뉴턴은 과학의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의 엄밀함을 이용한 증명과 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엄밀한 수학의 바이블 격인 유클리드의 원론은 따르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뉴턴의 과학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수학적 엄격함이 근대 과학의 중요한 밑받침이 되기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엄밀하고 정확한 근대 물리학의 완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같은 책은 앞으로도 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를 책 한 권이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어찌 보면 뉴턴이 인류 전체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인류의 후손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뉴턴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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