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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Jan 03. 2022

슈뢰딩거의 고양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원자 속 입자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변수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관찰에 의해 고정시키기 전까지는 모두 알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하나의 특징을 정확히 측정하면, 다른 특징은 불확실하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이 측정 과정 그 자체의 역학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믿었다. 물리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측정의 대상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이 계를 바꾸고 이후의 입자의 상태는 불확실해진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스승이었던 닐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는 관찰자도 측정하는 계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측정 장치를 포함시키지 않고 측정 대상을 논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입자를 추적하려면 빛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입자가 홀로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입자의 운동을 기술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서 보어는 슈뢰딩거의 방정식과 파동함수 개념에 의존했다. 측정 대상의 특징이 관찰 행위에 의해 입자 또는 파동으로 고정되어 있을 때, 우리는 파동함수가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모든 확률은 하나의 값만을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오로지 결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빛줄기의 파동함수에는 빛이 파동으로 행동할 확률과 입자로 행동할 확률이 섞여 있고, 우리가 빛을 검출하면 파동함수는 붕괴되어 하나의 형태만 남기는데, 그 이유는 빛이 스스로의 특징을 바꾸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빛이 정말 그 둘 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코펜하겐 해석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슈뢰딩거였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양자계는 결정되지 않은 어두운 상태로 있다가 관찰자가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켜면 그때서야 관찰자의 실험으로 무엇을 측정할지가 결정된다. 빛은 우리가 어떠한 형태를 실험할지를 결정하기까지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고, 우리가 마음을 정한 이후에 그중 하나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슈뢰딩거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능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사고실험을 제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다. 슈뢰딩거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양이라는 것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제안했다.


  강철 상자 안에 고양이가 갇혀 있다고 가정하자. 상자 안에는 고양이와 함께 맹독성인 시안화수소산이 들어 있는 플라스크가 있고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면 이 시안화수소산 플라스크가 산산이 부서지게 되어 있다. 고양이의 생사는 바로 이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느냐 마느냐의 확률에 달려있다.


  만일 이 전체 계를 건드리지 않고 한 시간 정도 놓아두면, 고양이는 원자가 붕괴되지 않는 동안에는 살아 있고, 원자가 붕괴되면 죽는 것이다. 한 시간 후에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과 죽어 있을 확률은 반반이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상자가 닫혀 있는 동안에는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뒤섞인 상태, 즉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에야 고양이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는 빛이 파동인 동시에 입자이다가 관찰자가 어떻게 측정할지 선택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되고 한 가지 특성만 선택되는 것과 같다. 슈뢰딩거는 이러한 설명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분명히 죽어 있거나 살아 있거나 그 두 가지 중 하나이지, 죽어 있는 동시에 살아 있는 두 가지 상태의 혼합된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했다. 관찰이 어떻게 파동함수를 붕괴시키는가? 누가 관찰을 하는 것인가? 그 관찰 주체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물질이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중성의 원리는 실험에서 관찰되고 있다. 코펜하겐 해석의 논리를 계속 쫓아가다 보면 수수께끼는 끝이 없게 되고, 우주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이런 식으로는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과학은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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